지난 주말 전라북도 장수의 봉화산을 갔습니다. 산 능선을 한참 타는데 ‘위윙’ 하는 기계 소리가 들려 왔어요. 이 높은 곳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걸까 궁금해하며 가다 보니 널찍한 장소에 두세 기의 묘지가 나왔습니다. 남성 대여섯 명이 벌초를 하고 있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산소에서 예초기로 풀을 깎고 갈고리로 긁어내는 익숙한 풍경이었습니다. 옆에는 막걸리와 포, 과일도 있었고요.
가끔 산에서 산소를 보곤 하는데 볼 때마다 ‘참 높은 곳에 산소를 써서 후손들을 힘들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 본 산소도 높이 800~900미터쯤에 있었지요. 저는 그냥 올라오는 것도 꽤 힘들었는데, 예초기 같은 무거운 장비에 제수용품도 챙겨온 분들이 대단해 보였습니다. 그 정성에 감탄하며 어느 분 묘소냐고 여쭤보니 무려 6대조 할아버지라고 하더군요. 6대조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잖아요? 일제 강점기나 구한말도 아니고 영조나 정조 대왕 시대에 사셨던 할아버지 묘소까지 벌초하고 성묘하다니… 오래도록 남아 있는 유교 전통의 일각을 엿본 듯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예전에 저도 벌초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추석 2~3주 전 일가친척 중 남자들이 모여 벌초를 했죠. 저희는 제 기준으로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두 분 묘소만 벌초했습니다. 시골 마을에서 논 옆에 차를 세우고 30~40분 산으로 걸어 들어가면 산소가 있었어요. 추석 즈음에는 여름 한철 무성히 자란 풀들이 덮여 있었습니다. 낙엽송 빼곡한 숲 바닥에 잎이 깔려서 카펫처럼 부드러웠고요. 바닥에 떨어진 밤송이를 까서 밤톨을 꺼내는 건 보물찾기 같은 소소한 재미였습니다. 어렸을 때는 왜 가는지도 모르고 어른들 따라서 소풍처럼 갔다왔습니다. 나중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선 두 분 묘소도 추가되었죠. 그러다 15년쯤 전에 네 분 묘소를 정리하고 공동묘지에 납골묘를 마련해서 같이 모신 뒤로는 벌초를 할 일도 없어졌지요.
사라진 풍경은 또 있습니다. 예전에는 할머니집에서 추석 전에 모여 진짜로 송편을 빚었어요. 전도 부치고 제사 음식을 마련해 집에서 차례를 지냈지요. 언젠가부터 조금씩 간소해져서, 지금은 추석날 묘지에 모여서 간단히 준비한 음식을 차려 성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함께 먹습니다. 차를 한잔 하고 나서 나면 각자의 일정을 수행하러 헤어집니다. 한지붕 아래 함께 자고 그런 일들은 없어졌지요. 편하고 자유롭긴 한데 친척끼리 같이 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생각이 들어 종종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같이 밤에 술을 마시는 일도, 고스톱을 치는 일도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았습니다.
물론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추석이라는 명절은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로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유교의 조상 공경 및 숭배와 결합되어 우리가 기억하는 형태가 만들어졌을 겁니다. 종교적 믿음이나 산업 형태, 사회조직이 달라진 지금은 분명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이 많지요. 오늘날 삶의 사이클은 농사와는 관계없이 각자 개인에 따라 돌아가고, 부모님과 조부모님과는 돈독해도 6대조 같은 먼 조상과의 연결감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가족과 친척의 의미도 일가 대부분이 인근에 모여 살던 시대와는 다르겠죠. 기반한 조건이 달라진 이상 명절의 모습은 바뀔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건 우리가 공유하는 의례(ritual)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요즘 ‘리추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많잖아요? 리추얼은 단순히 반복적으로 하는 좋은 습관이 아닙니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삶에 매듭을 묶고, 자신의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죠. 그리고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 문화적인 전통 속에서 함께 수행했을 때 진정한 의례가 되죠. 사회학의 아버지쯤으로 여겨지는 에밀 뒤르켐은 “의례가 없다면 사회가 없을 것”이라고 하며, 의례가 가지는 사회적 기능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의례는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소속감을 부여합니다. 이를테면 차례를 통해 한 가족이라는 인식이 심어지고, 학교에선 운동회를 통해 한 학교 학생으로 뭉치게 되는 식이죠. 또 설, 대보름, 삼짇날, 한식, 단오, 칠석, 추석, 동지로 해마다 돌아오는 명절과 그때마다 수행하는 의례들은 우리 삶이 계속 이어지리라는 안정감을 줍니다. 비유하자면, 의례는 삶을 고정시키는 압정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출렁이는 바다에 떠 있는 부표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의례를 상실하면서 현대인들이 근원적인 불안과 우울에 시달린다는 문화심리학 쪽의 분석도 들은 적이 있어요.(읽어 보진 않았지만 한병철의 『리추얼의 종말』이 이런 내용을 담지 않았나 합니다)
심층생태학을 소개하는 원더박스의 책 『딥 에콜로지』에서도 의례의 중요성을 이렇게 이야기해요.
이탈리아의 시에나는 인구 5만 9000명의 도시로, 비슷한 규모의 서구 여느 도시와 비교했을 때 최저의 범죄 발생률을 보인다. 청소년 비행, 약물 중독이나 폭력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계층 간의 대립과 세대 간의 대립도 없다.
왜 그럴까? 시에나는 달팽이, 거북이 등을 상징 동물로 삼는 각각의 콘트라다(구역)와 매년 말 경주를 개최하는 팔리오 축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집단적으로 일련의 정기 의례를 펼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 팔리오 축제일로부터 일주일 전에 시 소속의 인부들은 노란색 흙(시에나 외곽의 들에서 가져온 흙)을 가져와 중앙광장인 캄포에 뿌리기 시작하는데, 그렇게 해서 시에나 시와 그 도시의 장소의 근원을 연결시킨다. 사실 1년 중 어느 때라도 누군가 기운을 불어넣어야 할 때면 이런 말을 듣는다. “걱정 마, 곧 광장에 흙이 덮일 거야.” (…)
의례는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의례야말로 연결하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의례는 매 단계마다 소통할 수 있게 한다. 개별 인간 유기체 내부의 모든 시스템 간에, 사람들과 단체 간에, 도시의 단체들 간에, 자연환경의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에 모든 단계를 걸쳐 소통할 수 있게 한다. -431~434쪽
제가 그리워하는 건 이런 의례인 거 같습니다. 나보다 더 큰 무엇에 연결되어 의미를 주는 일을 하는 행사. 한국은 사회가 빠르게 변한 만큼 의례도 빠르게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개인이 알아서 ‘너의 삶을 의미 있게 해라’고 주문하고 있죠. 저는 개인을 문화와 사회 속에 연결시키며, 그를 신성하고 고귀한 어떤 일에 참여시키는 의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간간이 나타나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의 거리 응원이나 촛불&응원봉 시위가 참여자들을 깊이 고양시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거고요. 파편화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의미와 연결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현대에도 여전한 무속적인 믿음(어쩌면 MBTI 같은 것도)과 늘어나는 각 영역의 팬덤 활동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작년에 출간된 『인간은 의례를 갈망한다』라는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추석입니다. 이 전통적 의례가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도 높은 산에서 벌초하는 걸 마다하지 않을 만큼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 저는 반가웠습니다. 추석이라고 같이 산소에 모이고 안부를 나누는 가족들이 새삼 고맙고요. 그런 낡고 번거로운 형식 속에 아직 어떤 뜻깊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 모두 넉넉하고 뜻깊은 한가위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