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통신] 나의 하루는 달라졌지만 세상은...
잠깐, 우리 책 홍보~🙋
📖[심심한 독후감] 바닥을 치고 상승하기
📖 [와작와작 책 파 먹기] 『가짜 뉴스의 모든 것』
🖌️[못 그려도 괜찮아] 버드 스트라이크 - 인간과 새의 공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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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통신
by 참새🐦
지난해 마지막 주 월요일부터 제 하루는 달라졌습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을 때 집중력이 높아졌고, 따라서 이전보다 일을 더 수월하게 하는 기분이며, 퇴근할 때도 체력이 남아서 무언가 더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얘기를 시작하면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 묻곤 합니다. “요새 뭐 먹어?” 영양제 산업계의 끊임없는 홍보와 설득, 약한 것을 배척하는 문화, 그리고 한국 사회의 노동 조건이 낳은 질문이죠. 한계에 다다랐지만 시간을 빼앗겨 대안도 사라져 버린 현대 한국인이 기댈 수 있는 유능한 도우미가 바로 영양제니까요. 저도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종합 비타민제를 하루 한 알 먹습니다. 주말에 되도록 먹지 않는 건, 거르지 않고 먹어 보니 식욕 저하와 속 울렁임, 체력 소진 등의 부작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 두 주쯤 계속 먹으면 위와 같은 증상이 나타나더라고요. 여러 번 시험해 봐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어, ‘아, 나는 영양제도 쉬면서 먹는 게 좋겠구나!’ 하고 여기게 되었죠.
하지만 영양제를 먹든 말든, 2024년 12월 넷째 주 금요일까지는 사무실에 앉아 있을 때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겨웠습니다. 멍한 상태로 컴퓨터 화면을 보기 일쑤였죠. 오후 5시에 가까워지면 글자가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는 날도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는 글 내용이 머리에 아예 들어오지 않았죠. 이럴 때 편집자로서 느끼는 위기감은 상당했습니다. 생계를 이어 갈 다른 대책은 없지만 조만간 일을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랬는데 딱 한 가지가 바뀌니 하루가 달라졌습니다. 바로 교통수단입니다. 파주와 서울을 잇는 광역급행철도 GTX가 개통했거든요. 저희 집과 사무실 사이 거리는 꽤 멀어요. 파주에 있는 집에서 광화문 부근의 사무실까지 42킬로미터쯤 되죠. 이 거리를 13년 넘게 대중교통으로 오가고 있는데, 길이 하나도 안 막히는 특별한 경우를 빼면 이동 시간이 편도 1시간 40분이 기본, 2시간 30분이 넘게 걸린 때도 가끔 있었습니다. 인하대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하루에 출퇴근 시간이 60분 이상 걸리는 사람이 30분 미만인 사람에 비해 우울증 증상을 보일 가능성이 16퍼센트 더 높았고, 워싱턴대학 의대의 조사에 따르면 출퇴근 거리가 24킬로미터 이상이면 지방 과다, 비만 비율이 높고 불면, 우울증, 분노 같은 정신적 고통도 컸다고 합니다. 지인이 출퇴근 힘들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저는 이제 적응되었다, 다닐 만하다고 답해 왔지만, 사실 몸과 마음은 지쳐 있었습니다. 저 자신을 달래며 간신히 이어 왔을 뿐이지요.
그런데 GTX를 이용하면서 이동 시간이 편도 1시간 10분 정도로 바뀌었고, 그러자 몸과 마음이 몰라보게 편안해졌습니다. 극명한 변화가 놀라워 다른 이동 수단이 머리에서 싹 지워질 정도예요. 지난주부터는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8시까지 출근하여 50분쯤 조용히 글을 읽거나 조사를 한 뒤 주문 업무를 보기 시작했는데, 50분 동안 몸과 마음이 차분해진 덕분인지 집중력과 업무 효율이 꽤 좋아졌습니다. 퇴근할 때 기운도 남아 있어서 집에 도착해서 다른 것을 할 수 있게 되기도 했고요. 전에는 저녁 먹고 축 늘어져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잠들었는데, 이제는 무언가에 편안히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편집자로서 미래를 좀 더 긍정적으로 그려도 되겠는데!’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이렇게 새로 생겨난 교통수단의 혜택을 입어 희망을 품게 되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했을 때 가장 좋았던 것은 봄에 우는 개구리 소리였어요. 그때는 집 주변에 논과 밭이 많아서 개구리 울음이 시끄러웠지만, 생명이 약동하는 느낌도 함께 전해져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도시가 점점 넓어지면서 논밭이 많이 사라져 ‘올해는 개구리 소리가 들리려나?’ 하고 봄마다 걱정하죠(다행히 작년까지는 작지 않게 들렸습니다). GTX 공사로 인한 폭발음과 작은 진동이 제 몸까지 전해질 때는 ‘나는 입으로만 걱정하지만, 저 공사로 인해 심각한 위험에 빠진 생명들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슬펐습니다. 또한 도시화와 장거리 출퇴근이 생태계에 끼치는 부담이 엄청날 거라는 자각이 들면 지구에 피해를 덜 주는 다른 삶을 꿈꿨습니다. 염치없음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대로네요. GTX나 좋아하고.
저는 언제쯤 길가의 참새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생명의 미래와 민주주의를 지키려 거리에 나선 모든 이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편집자 참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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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치고 상승하기
오늘은 아껴뒀던 책을 소개해 봅니다. 로버트 퍼트넘의 『업스윙』입니다.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사회학자로, 사람들 간에 맺는 관계와 커뮤니티가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전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특히 그는 1990년대 이후 미국 사회에서 공동체가 분열, 해체되고 있는 것을 우려하며 이를 알리는 책들을 썼습니다.
대표작이자 국내에 처음 소개된 책인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은 제목에서부터 이런 현상을 담아내고 있죠. 예전에 함께 어울려 볼링을 치던 사람들이 점차 나 홀로 볼링을 치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 책은 그러한 작은 취미 모임부터 정치, 종교, 직장 모임 등 다양한 영역의 커뮤니티들이 1960년 이후 꾸준히 쇠퇴했다는 것을 방대한 자료와 잘 선별된 사례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무엇이 이런 쇠퇴를 가져왔는지, 왜 사회적 자본의 감소가 문제인지 이야기하며 이 추세를 되돌려야 함을 주장하지요.
퍼트넘의 논지는 다음 책인 『우리 아이들』에서도 이어집니다. 이 책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어째서 사라졌는지를 탐구하는데, 저자가 제시하는 한 가지 답은 ‘계급 간의 분리’입니다. 과거에는 부자든 가난한 자든 같은 동네와 학교에서 살고 비슷한 문화를 향유하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은 삶의 모든 측면에서 격차가 벌어졌다는 것이지요. “가족이든 아니든 간에 마을 사람들은 모든 졸업생을 ‘우리 아이들’로 생각”했던 과거는 사라지고, 각자 ‘자기 아이들’만 챙기면서 빈부격차가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 퍼트넘의 비판입니다. 그렇기에 필요한 건 가난한 아이들을 포함해 모든 아이들을 ‘우리 아이들’로 보고서 책임감을 가지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퍼트넘은 이야기합니다. 그는 정말이지 제가 읽은 저자 중 가장 확고하고 신념 있는 공동체주의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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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그의 세 번째 책인 『업스윙』의 주제 역시 공동체입니다. 그는 이 책에서 경제, 정치, 사회, 문화의 네 핵심 분야가 공동체라는 기준에서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추적합니다. 즉 경제: 미국은 더 많은 혹은 더 적은 경제적 평등을 향해 이동했는가? 정치: 더 많은 혹은 더 적은 공동체 정신과 타협을 향해 이동했는가? 사회: 사회생활은 더 많은 혹은 더 적은 사회적 단결을 이루었는가? 문화: 문화적 가치에서 더 많은 혹은 더 적은 이타주의를 실현했는가?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125년이라는 긴 역사적 기간 동안 어떤 추세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지요.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요?
이 질문들의 답은 곧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합니다. 바로 ‘나I-우리WE-나I’ 패턴입니다. 미국 사회는 극심한 개인주의에서 공동체주의로 상승했다가 다시 개인주의로 하강했다는 겁니다.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네 영역 모두에서 말이지요.
경제는 ‘불평등-평등-불평등’으로 정치는 ‘분열-협력-분열’으로, 사회는 ‘고립-단결-고립’으로, 문화는 ‘개인-공동체-개인’으로. 이것이 퍼트넘이 발견한 미국 사회의 패턴이며, 그는 이것을 뒤집어진 U자 곡선으로 요약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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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세기 말 부정부패와 사회적 분열이 심했던 ‘도금시대’를 탐구의 시작점으로 삼습니다. 그때는 록펠러와 카네기가 왕국을 이룬 독점 자본가의 시대였으며, 남북전쟁 이후 정당들이 폭력적으로 대립한 시기이기도 했죠. 이민자가 급증하면서 인종차별도 팽배했으며, 이념적 갈등도 극심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최저점에서 미국 사회는 (공동체주의의 관점에서) 차츰 상승 추세로 이동합니다. 불평등은 완화되고 정당들은 타협의 미덕을 배웠으며 사회는 안정화됩니다. “국가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 물으십시오”라는 케네디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은 국가가 개인을 억압하는 국가주의적 수사가 아니라, 개개인에게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무를 일깨우는 발언이었습니다. 이때가 ‘우리’ 중심 사회의 최고점이었지만, 추세는 반전되어 다시 ‘나’ 중심 사회로 하강합니다. 오늘날의 상황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퍼트넘은 경제 지표와 투표 패턴, 기사와 책, 영화와 노래, 심지어 아이들의 이름 짓기와 대명사 사용 빈도 등 놀랄 만큼 다양한 자료를 동원해, 이 뒤집어진 U자형 추세를 아주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면 미국에서 발간된 책들에서 ‘나I’라는 대명사는 1900년에서 1965년까지는 점점 줄어들다가, 1965년에서 2008년 사이에는 두 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반면 ‘단결’과 ‘협력’이라는 단어는 1960년대까지 사용이 늘다가 그 후에는 점차 줄어들었고요. 이렇게 퍼트넘은 빈번히 사용되는 단어 변화를 통해서도 ‘나-우리-나’의 패턴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이름에서도 흥미로운 변화가 발견됩니다. 과거에는 존, 데이비드, 수잔, 메리 같은 흔한 이름을 많이 지은 반면에, 지금은 실라스, 제이든, 하퍼, 모드처럼 개성 있는 이름들이 많아졌다는 것이지요. 한국에서도 요즘엔 아이들의 이름이 다양하고 철수나 영희 같은 흔한 이름은 사라졌지요. 이 역시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려는 ‘나’ 중심 문화가 커졌다는 증거로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나-우리-나’의 패턴을 통해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과거가 좋았는데 지금은 엉망이 되었다는 푸념?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거였다면, 이야기의 시작을 19세기 말로 잡지 않았을 겁니다. 저자는 정치, 경제, 사회가 점점 건전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그가 주목한 것은 과거에 있었던 저점에서의 상승, 즉 ‘업스윙up swing’입니다. 저자는 여러 통계 자료를 살펴보다가 이 패턴을 발견하고, 이 발견을 공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집필 동기를 밝힙니다. 즉 미국은 모든 것이 암울한 최악에서 빠져나와 제법 괜찮은 사회를 이룬 적이 있으니, 지금의 바닥에서도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죠.
이 책이, 그리고 저자가 가진 또 하나의 미덕은 좋았던 과거를 이상향으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비록 1950~60년대의 미국이 놀라운 성취를 이룬 것은 맞지만, 젠더와 인종 문제에서는 많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정하죠.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이런 소수자까지 끌어안는 새로운 ‘업스윙’이죠. 저자는 여기서도 사회가 ‘나’ 중심이 아니라, ‘우리’ 중심일 때 차별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도널드 킨더와 하워드 슈먼은 2004년 이런 현상을 관찰하며 메리 잭먼의 말을 인용했다. “백인은 개인주의의 이념을 옹호하게 되었다. 그것이 흑인들을 돕는 여러 정책을 반대하는 데 있어서, 원칙에 입각한 중립적 정당화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앞 선 네 장에서 기록한 경제, 정치, 사회, 문화에서 “우리”로부터 “나”로의 광범위한 전국적 변화는 명백히 백인만큼 흑인에게도 해가 되었고, 그 이상일 수도 있다. 개인주의적 미국은 공동체주의 미국만큼이나 여러 소수 인종에 친절하지 않으며, 때로는 그보다 못하기도 한다." -357쪽.
저는 이 책을 읽으며 80대에 이른 이 노학자의 힘 있는 낙관주의에 감탄했습니다. 퍼트넘은 이 책에서 지금이 비록 역사상의 저점으로 보일지라도, 다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시합니다. 그의 궁극적인 답은 역시 공동체입니다. ‘나’는 그렇게 역사의 추세를 돌릴 수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따라서 나-우리-나의 패턴을 보여주는 20세기에서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역사의 교훈은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우리는 전에 한 번 지금과 같은 엉망진창의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빠져나온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둘째, 최초의 진보주의 시대와 그 뒤로 이어진 몇십 년 동안, 미국은 “우리” 공동체주의가 정말로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을 달성할 만큼 충분히 높은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고, 또 온전한 통합의 난제를 충분히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가 현재 직면한 문제는 역사의 물결을 되돌릴 수 있는가, 혹은 되돌려야 하는가가 아니다. 우리가 개인의 자유 측면에서 이룩했던 진전을 후퇴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예전의 공동체주의 미덕을 되살릴 수 있는가, 그게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런 과업은 쉽지 않을 것이고, 이런 미국적 실험의 성공이야말로 아주 중대한 문제이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면서 나-우리-나의 20세기가 우리 미국에게 안겨준 가장 큰 교훈을 명심해야 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그 교훈을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 국민 생활의 근본적인 규칙, 즉 모든 다른 규칙의 기저가 되는 규칙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전체적으로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승할 때든 하락할 때든, 반드시 함께 가야만 한다.”" -50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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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각자 선택한 대통령 후보에게 워낙 헌신한 까닭에, 자기네 후보에게 긍정적인 내용은 뭐든지 진짜라고 믿었던 반면, 부정적인 내용은 뭐든지 가짜 뉴스라고 믿었다. 이런 식으로 해서, 많은 사람들은 (단지 사실만을 보도할 뿐이었던) 정상적인 미디어 업체를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고, 또는 가짜 뉴스라고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아울러 이들은 어떤 일에 대한 각자의 개인적 의견이 현실보다 더 중요하고 타당하다고 믿기 시작했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는 “탈진실post-truth”을 2016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면서, 이를 가리켜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객관적인 사실이 그저 감정과 개인적 믿음에 호소하는 것보다 오히려 덜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과 관련된, 또는 그런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 『가짜 뉴스의 모든 것』 20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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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객기 사고가
버드 스트라이크(새충돌)도 원인 중의 하나라는 기사를 보았다.
새들도 원치 않았고,
여객기 또한 원치 않았던 사고.
마음이 아팠다.
버드 스트라이크를 방지하기 위한 논문도 찾아 읽었다.
전 세계 공항에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여객기와 새들이 전파를 주고받으며 피해 가는 모습을
AI에게 그려보라고 했더니.
새들의 언어를 연구해서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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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받았답니다~📬
💌 항상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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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레터입니다. 혼란과 슬픔의 연말이 지나고 2025년이 왔습니다. 그리 희망찬 기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새해 첫날에는 일출에 맞춰 산에 올랐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와 있더군요. 모두 새해에는 더 행복하고, 건강하고,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겠지요. 부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올해입니다. 독자 여러분께도 새해에 좋은 일이 가득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원더박스에도 좋은 일이 많기를 기원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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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진 않지만 저 구름 뒤에는 분명히 해가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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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뉴스레터, 누가 보내는 거야??👀
🐦편집자 참새
아침에 공원에서 한 똘똘한 참새를 만난 뒤로 틈틈이 참새를 지켜봅니다.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물을 자주 마십니다.
🌱편집자 들풀
책, 술, 산을 좋아하는 편집자. 초등학교 때 한 주에 한 번 동네에 오는 이동 도서관 덕분에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 보지 않을 책은 사지 않는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 비밀요원K
외계인. SNS에서 지구인들 탐색하면서 지구인인 척 댓글 놀이를 하고 있음. 모 출판사에서 비밀요원으로 암약중이며, <못 그려도 괜찮아>라며 맘대로 막 그린 그림들을 올려서 지구인들 테러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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