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약간의 홍보차 <죄 없는 죄인 만들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 책의 원제는 ‘Blind Injustice’인데요, 사실 처음엔 이게 뭔 뜻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습니다. 직역하면 ‘눈먼 불의(不義)’쯤이 될 텐데, 그냥 일반적으로 ‘불의에 눈을 감는 것’ 정도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다 번역원고를 받아보고 교정을 하면서 뭔 뜻으로 이런 제목이 되었는지 알았습니다.
이 책의 1장 초반부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나는 인간 심리의 결함과 정치적 압력이 어떻게 형사사법 분야의 행위자들—경찰관, 검사, 판사, 변호사—을 기이하고도 놀라우리만치 불공정한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이를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지 설명하려 한다. 개인 차원으로나 사회 차원으로나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 대체로 눈 감고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다들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정말이지, 우리 형사사법제도는 불의에 눈 감은 제도다.”
이 부분을 읽고서, ‘앗, 제목이 여기서 왔겠구나’ 하는 직감과 함께 이 문장의 의미가 확실히 이해가 되었어요. 이 문장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Indeed, ours is a system of blind injustice.” 그러니까 이 문장은 ‘정의는 눈을 감았다’라는 법의 원칙을 살짝 비튼 문장인 겁니다.
혹시 법원 등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보통 정의의 여신상은 눈을 가리고 있거나, 눈을 감고 있습니다. 정의란 그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지, 신분이 높든지 낮든지, 부유하든지 가난하든지,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미죠. 그래서 ‘정의는 눈을 감았다blind justice’라는 말은 얼핏 나쁜 말 같지만, 사실은 ‘정의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뜻이 됩니다.
요렇게 이해를 하고 나니, 저 밑줄 친 문장을 약간 수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역은 정확하고, 맥락으로도 문제가 없지만, 저 문장만으로는 ‘눈먼 정의’와 ‘눈먼 불의’ 사이의 대비가 드러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1교를 볼 때 저 문장에 부연 설명을 넣어서 이렇게 바꿨습니다.
“우리 형사사법제도는 눈을 가린 채 정의를 실천하는 게 아니라, 눈을 가린 채 부정의를 행하고 있다.”
그런데 3교를 보다가 ‘형사사법제도가 부정의를 행하는 것까진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또 들었어요. 저자는 죄 없는 죄인을 만들어 내는 형사사법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기는 하지만, 형사사법제도와 그 구성원들을 존중하고 있었거든요. 저렇게 되면 형사사법제도라는 것이 영 몹쓸 것으로 읽히겠다는 우려가 들어서 한 번 더 바꿨습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책에는 이렇게 실렸습니다.
“우리 형사사법제도는 정의의 여신처럼 눈을 가린 채 정의를 실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불의에 눈감고 있다.”
눈을 가렸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하려고 ‘정의의 여신’의 비유를 넣었고, ‘불의에 눈감다(blind injustice)’라는 원제를 살려주는 쪽을 택했습니다.
편집자의 교정교열 업무는 대강 이런 식입니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 최선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일하죠. 모쪼록 그런 노력이 독자들에게 가닿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