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비판이 가해지는 지점도 이 부분입니다. 이 책이 지나치게 세상의 밝은 면만 보고 있다는 것이죠. 물론 사회를 길게 조망했을 때 빈곤율이 감소하고, 예방접종율이 늘어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대단한 진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런 통계는 지금 현실에서 질병과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이들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을 겁니다. 장기적으로 인류 사회에서 대규모 전쟁이 줄었다고 해서, 지금 가자 지구에서 고통 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진 않을 테고요. 지금 당장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세상이 좋아지고 있다는 이 책의 메시지가 한가한 주장처럼 들릴 수밖에 없겠지요. 사실 급속도로 발전한 한국 사회에서는 더 잘 이해할 만한데, ‘옛날에 비하면 이만큼 살게 된 게 어디냐’는 식의 주장은 분명 사실에 근거했지만 아무래도 기득권자의 변명으로 들리지요.
이 책이 팩트를 취사 선택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데이터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글로벌 불평등이 줄어들고 세계 전체의 절대빈곤율이 감소하고 것은 팩트입니다. 하지만 한 국가 내 소득불평등에 대해서는 데이터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호랑이, 대왕판다, 검은코뿔소가 1996년에 비해 더 보호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때보다 더 위험에 처한 생물종이 늘어난 것 역시 사실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연 배출은 줄어들었지만, 탄소 배출은 여전합니다. 이 책은 심지어 ‘늘어나는 좋은 것 16가지’를 제시하면서 새로 나온 영화와 음악, 올림픽 참가 국가의 수가 늘고 있다는 것도 포함시킵니다. 그런 것도 세상이 좋아진다는 징표로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식이라면 이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팩트도 얼마든지 제시할 수 있다고 비판가들은 꼬집습니다.(책에 대한 비판이 잘 요약된 이 글을 소개합니다)
저는 저자들이 이 책의 이런 약점을 몰랐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이미 이만큼 좋아졌으니 만족하고 살자는 식의 논리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보다 이 책이 긍정적인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희망을 가지고 힘을 내자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전쟁, 재난, 빈곤, 부패, 폭력… 쏟아지는 부정적인 뉴스는 사람들에게 환멸과 좌절감을 줍니다. 이 책은 그런 부정적인 뉴스에 휩싸이지 말고, 세상의 발전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볼 것을 제안합니다. 그것이 더 건설적이라면서 말이죠.
“걱정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걱정할 대상을 제대로 알자는 뜻이다. 뉴스를 외면하라거나 행동을 촉구하는 활동가의 말을 무시하라는 뜻도 아니다. 소음을 무시하고 중요한 세계적 위험에 주목하자는 뜻이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냉철함을 잃지 말고, 그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 협력을 지지하자는 뜻이다. 다급함 본능과 모든 극적 본능을 억제하라. 세계를 과도하게 극적으로 바라보고 상상 속에서 문제를 만들어 스트레스 받기보다 진짜 문제와 해결책에 좀 더 집중하자.”
우리가 해결해야 할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 그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시급하게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그 문제의 해결 가능성에 집중하며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게 나을까요? 어쩌면 이 책과 그 비판자들은 문제에 접근하는 이런 두 가지 상반된 태도에서 입장이 갈리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사회과학이나 언론매체는 전자의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저도 이런 식이 익숙합니다)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그 문제에 압도당해 의욕 자체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걱정으로 기후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 그 한 예입니다. 그래서 저는 문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물론 낙관주의가 과하면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비판가들은 이를 염려하는 것이겠죠.
개인적으로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다’ 식으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낙관주의가 힘을 주는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긍정적인 내용을 보여주는 책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살펴보기도 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제를 아프게 지적하고 찌르는 것이 낫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밝은 면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고 보시나요?
이렇게 쓰고 나니 '물이 반밖에 안 남았다'와 '물이 반이나 남았다'의 차이처럼 보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