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통신] 편집자의 도구
📢소소한~ 소식
📖 [심심한 독후감] 피구의 추억
🖌️[못 그려도 괜찮아] 나팔꽃-지구인 얼라(어린아이) 같은 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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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통신
by 들풀🌱
저번 메일에서 소개 드렸듯이, 저는 요즘 독일어 번역 원고를 편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독일어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운 적은 있네요. 하지만 그 후론 본 적이 없으니 의식 밑에 파묻혔을 만큼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건 Ich liebe dich(I love you) 같은 몇몇 어구와 독일어 문법이 끔찍하게 복잡하고 어려웠다는 것 정도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전혀 모르는 언어가 원문인 경우에는 교정교열을 어떻게 볼까요? 의문 나는 부분을 번역자에게 문의하기도 하지만, 매번 그러기도 한계가 있고 번역이 제대로 됐는지 알려면 원문을 봐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말이죠. 다행히 요즘은 아주 도움이 되는 친구가 있습니다. 바로 AI 번역기입니다! 특히 이번에 챗GPT가 번역을 아주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익숙한 구글 번역이나 파파고를 이용하다 챗GPT는 이번에 처음 써봤는데, 상당히 그럴 듯한 번역문을 내놓더군요. 정말로 저보다 더 번역을 잘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번에는 목차를 짜는 용도로도 써봤는데, 당연히 어설프긴 해도 생각의 틀을 정리해 주는 데는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챗GPT가 앞으로 편집자들에게도 유용한 도구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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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원고 교정에 챗GPT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이 나온 김에 오늘은 편집자들이 일할 때 쓰는 도구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사실 전통적으로 편집자들이 곁에 둔 것은 사전이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종이로 된 사전을 끼고 일한 경험은 많이 없습니다만(이미 온라인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사전이 많은 시기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고참 편집자 선배님들이 말하길 출판사에는 모름지기 다양한 사전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했었지요. 국어사전, 영어사전은 물론이고 다양한 언어의 사전이 필요했고, 백과사전이나 전문용어 사전 등도 있어야 했습니다. 인터넷상에 정보가 없던 시절, 혹은 있어도 충분하지 않거나 부정확했던 때는 그런 사전류가 중요한 데이터베이스가 됐을 겁니다. 저도 초기에는 종이 사전을 몇 번 뒤적였던 기억이 있지만, 차츰 인터넷상에서 더 다양한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언제 종이 사전을 봤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형태가 달라졌을지라도, 여전히 잘 찾아 보는 것은 편집자의 덕목입니다. 이제는 여러 검색엔진과 위키백과가 편집자의 사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편집자 하면 많이 떠올리시는 것은 ‘빨간 펜’이실 겁니다. 빨강색 볼펜은 지금도 교정을 볼 때 많이 씁니다(빨강색이 아니라 파랑색을 쓰기도 합니다. 원고에 쓰인 검정색과 잘 구분만 되면 되니까요). 다만 빈도는 좀 줄어들었습니다. 요즘은 저자(또는 번역자)나 디자이너와 소통을 할 때도 문서 파일이나 PDF 파일에 교정 내용을 표시해서 주고받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종이로 출력해서 봤을 때 달리 보이고 자세히 보이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한 원고당 두세 번은 종이 위에 빨간 펜을 대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예전에는 화이트도 많이 썼어요. 빨간 펜으로 원고를 고쳤다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시 고치고 싶을 때 화이트로 지우고 다시 적고 그랬죠. 여러 시간 교정을 보고 난 뒤에 손에 하얗게 화이트 액이 묻은 기억이 나네요. 경험이 쌓이면서 그런 고민과 수정은 원고를 조판하기 전에 파일 상태에서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걸 알고 화이트를 사용하는 일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PDF도 편집자에게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요즘은 저자와 디자이너에게 수정을 요청할 때 PDF에 표시해서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종이에다 표시해서 보내는 건 택배나 퀵으로 오가야 하니 시간이 더 오래 걸리게 되니까요. 그래서 요즘은 태블릿PC를 이용해 PDF 파일에 바로 교정을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이것도 PDF가 아주 보편화된 이후에 그렇게 자리 잡혔으니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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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교정 내용을 PDF에 옮겨서 디자이너에게 줍니다.)
가끔 카드뉴스나 홍보물을 만들 때는 미리캔버스 같은 디자인 플랫폼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물론 디자이너가 해 주면 더 좋지만, 회사 내부에 디자이너가 없는 경우에는 외주 디자이너에게 일일이 그런 걸 맡기기 힘들어서 직접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답니다. 다행히 예전에는 그런 걸 만들려면 인디자인 같은 전문 프로그램을 써야 했지만, 몇 년 전부터는 쉽게 디자인할 수 있게 해주는 플랫폼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희 인스타에 올라오는 좀 허술한 홍보물은 그렇게 편집자가 만든 거랍니다.
일하면서 어떤 도구들을 사용하나 짚어보려고 했는데 막상 쓸 내용이 많지가 않네요. 한글, 워드, 엑셀 같은 프로그램은 어디서나 쓰는 거고, 인디자인과 포토샵도 사용할 줄 알면 좋긴 하지만 꼭 필요한 건 아니고요. 예전처럼 펜과 종이만으로 일하는 건 아니지만, 편집자는 여전히 간단한 도구만 가지고도 일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건 저의 경험 안에서의 이야기고 다른 편집자들은 어떤 유용한 도구를 사용하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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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소식
한글날을 맞이하여 신기하고, 이상하고, 재미있는 한국어의 세계를 함께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강연자는 원더박스에서 나온 『말씨, 말투, 말매무새』의 저자이신 한성우 선생님이십니다.
우리 말이 어렵고 늘 궁금했던 사람들을 위한 한글날 특별 강연. 국어학자 한성우 선생님과 재미있고 신기한 말의 세계를 탐구해 볼까요? 🤗
✅ 일시: 2024. 10. 7.(월요일) 저녁 7시 ✅ 장소: 나무아래 4층(창경궁로 112-24, 1호선 종로5가역 1번 출구에서 300m) ✅ 강연자: 한성우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교수 (『말씨, 말투, 말매무새』 저자) ✅ 모집인원: 20명 ✅ 참가비 무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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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의 책꽂이 18화 피구의 추억
학창 시절, 저는 몸 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운동을 못하는 편도 아니어서, 무얼 하든 친구들과 어울려 그럭저럭 재밌게 했습니다. 특히 단체 구기 종목을 좋아했는데요. 농구, 축구, 야구, 배드민턴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뛰어다녔지요. 대학생이 되어서도 공강 때마다 농구장으로 달려갔는데요. 그 바람에, 강의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기억 나지 않는 여러 학생이 땀 냄새 때문에 고초를 겪었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안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해 온 여러 운동 종목 가운데 무엇을 할 때 가슴이 가장 두근거렸는지 잠시 떠올려 봤습니다. 농구? 경기 전에는 그랬지만, 일단 시작하면 가슴이 차갑게 뛰었던 것 같아요. 그건 축구도, 야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배드민턴은? 그냥 뛰어다니느라 바빴죠. 씨름도 했는데, 샅바를 잡으면 힘 쓰는 것보다 상대방 눈치를 더 많이 봤던 것 같네요.
가슴 두근거리는 종목의 제왕은 단연코 피구였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규칙도 냉엄한 데다(죽어도 상대 팀을 공격할 수 있지만 우리 팀이 다 죽으면 안 되니까) 공을 맞으면 아프기까지 해서, 정신 바짝 차리고 상대 팀을 노려보며, 치타에게 쫓기는 사슴처럼 살기 위해 경기 내내 몸을 굴리고 뛰어다녀야 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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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애 작가의 『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는 바로 그 피구를 소재로 한 그림책입니다. 체육 시간, 선생님은 피구 경기장을 그린 뒤 학생들에게 규칙을 설명합니다. “규칙은 간단해. 공으로 상대 팀의 몸을 맞혀 아웃시키면 되는 거야. 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
이윽고 경기를 알리는 휘슬 소리, 삐익―. 먼저 공을 잡은 윤이 공을 던지자, 상대 팀 아이들은 공을 피해 일제히 흩어집니다. 하지만 모두가 공을 피하지는 못했어요. 맨 앞에 섰던 최가 가장 먼저 공에 맞았죠. 경기는 계속되고, 이어 달리기가 느린 김, 눈이 나빠 안경을 쓴 한을 비롯해 우리 팀 친구들이 하나둘 공을 맞고 아웃됩니다. 어쩌다 보니 화자인 ‘나’는 우리 팀에서 마지막으로 살아남았고, 얼떨결에 공을 받아 냈습니다. 5초 안에 공격하지 않으면 내가 아웃되는 선택의 순간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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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이 두 번 울릴 때까지』는 사계절 출판사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함께 만든 ‘민주인권그림책’ 시리즈 중 한 권이에요. 민주인권그림책이라! 그렇다면 이 책은 상대방을 아웃시키지 않으면 내가 아웃되는 냉혹한 경쟁 사회를 피구 경기에 빗대어 표현한 그림책으로 볼 수 있겠네요. 실제로 책을 보다 보면 주홍색 선으로 그려진 경기장 안에서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친구 뒤에 숨고, 공을 피해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고, 때론 반칙까지 서슴지 않는(경기에서 민은 반칙으로 아웃됨) 피구 경기 현장은, 인정사정 보지 않는 현대 사회와 많이 닮았고요.
그뿐이 아니에요. 선생님과 아이들을 표현한 회색과, 공과 경기장을 표현한 주황색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가운데, 공을 맞고 일그러진 얼굴, 날아가는 안경, 돌아가는 고개를 보노라면 이게 운동 경기인지 폭력인지 구분이 안 될 지경이지요. 또 아웃되었음을 알리는 짧은 휘슬 소리는 어찌나 비정한지…. 누군가 “피구는 우리에게 경쟁 사회의 논리를 심어 주는 좋지 않은 구기 종목”이라고 말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만 같습니다.
이런 해석이 제 머릿속에서 뱅뱅 돌고 있었어요. 그러는 가운데 제 마음 한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또 다른 저는 이렇게 뻔하게 해석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봐. 너, 정말, 피구 경기 할 때, 네가 살겠다는 마음만 있었어?’ 사실, 그렇지 않았거든요. 공을 던질 때, 얼굴을 맞으면 아프니까 되도록 다리 쪽으로 던졌고, 우리 팀 친구들을 지키려고 몸을 던진 적도 많았어요. 책에서 공에 맞고 쓰러지는 아이들이 여럿 등장하지만, 어쩌면 공을 던진 아이들도 친구가 다치지 않도록 신경 많이 썼는지도 몰라요.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을 나오는 아이들이 회색에서 알록달록한 제 빛깔로 돌아가는 걸 보면, 긴장하고 움츠러들었다가 다시 웃고 떠들고 활발한 모습이 되는 걸 보면, 다들 친구가 자신을 해하려는 마음을 품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던 듯합니다. 어릴 적 피구 경기를 할 때 제 친구들 얼굴에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게 기억나네요.
저는 작가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를 도우려고 멈칫한 강”이나 책 속 화자인 ‘나’, 어쩌면 맨 앞에 선 최가 등장하는 건,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더라도 우리가 꼭 그 논리를 따르는 것만은 아님을,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한다는 걸 보여 주려는 작가의 마음이 표현된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피구는 즐거웠습니다. 다칠 때도 있었지만, 피구를 한 뒤만큼 그렇게 반 친구들끼리 서로 가깝게 느낀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요즘엔 그렇게 서로를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아 좀 아쉽습니다.
즐거운 가을 보내시기를!
가을의 초입에서
편집자 참새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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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저번 메일에 그림이 잘못 들어갔습니다. 😓 글 제목은 나팔꽃이었는데 예전에 보냈던 도라지꽃이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꼼꼼히 검토를 하지 않은 불찰입니다. 죽여...죽시진 마시고, 너른 아량을 베풀어 주시길... 😂😂 뒤늦은 나팔꽃을 보내드립니다.)
나팔꽃-지구인 얼라(어린아이) 같은 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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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 텃밭 담벼락에 나팔꽃이 신나게 피었다.
흠, 다른 생명체나 물체에 앵겨 붙어서 이른 아침부터 막무가내 시끄러운 놈이다.
지구인 얼라(어린아이) 같은 꽃?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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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받았답니다~📬
💌 1년 전부터 코스모스를 읽는 중 이예요. 연계 독서 + 톺아보기 하느라 일년째 읽고 있는데 400 페이지쯤 읽으니 연계독서로 카를로 로벨리의 <모든 순간의 물리학>이 연결되네요. 그리고,,, 원더박스의 <어린이를위한 모든 순간의 물리학> 이 생각나더라구요!!!! 바로 구매 GOGO !!! 아이가 이 책 지금 읽고 5-6년 뒤에 코스모스 읽으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답니다.
🌱 오오 독자님이시네요! 구매 감사합니다! 독서의 장점 중 하나는 한 책이 또 다른 책을 만나게 해준다는 점이죠. 그렇게 연결되는 그물망을 저는 좋아한답니다. <코스모스>는 멋진 책이죠. 저는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도 재밌게 봤습니다. 그 안의 한 구절이 정말 감동적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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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Letter~📮
이제야 가을 같은 날이 되었습니다. 맑고 시원해서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북한산을 올랐습니다. 공기가 제가 이제껏 북한산을 오른 중에 가장 맑아 감탄하며 오르는 중에 멀리 북쪽으로 제가 그동안 본 적이 없던 산이 보였습니다. '저 산이 뭐지? 저쪽에 저렇게 바위가 울퉁불퉁한 산이 없는데?' 혹시 북한에 있는 산인가 싶어 지도를 보니 그쪽 방향으로 개성의 송악산이 있더군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송악산이 맞았습니다. 날씨가 맑으면 북한산에서도 북한 땅이 보인다는 걸 체험했습니다.
멀리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풍경에 감탄하다가 새삼 미세먼지가 없던 시절에는 이렇게 맑은 날이 훨씬 많았을 거란 생각에 선조들이 살짝 부러워졌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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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뉴스레터, 누가 보내는 거야??👀
🐦편집자 참새
아침에 공원에서 한 똘똘한 참새를 만난 뒤로 틈틈이 참새를 지켜봅니다.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물을 자주 마십니다.
🌱편집자 들풀
책, 술, 산을 좋아하는 편집자. 초등학교 때 한 주에 한 번 동네에 오는 이동 도서관 덕분에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 보지 않을 책은 사지 않는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계인. SNS에서 지구인들 탐색하면서 지구인인 척 댓글 놀이를 하고 있음. 모 출판사에서 비밀요원으로 암약중이며, <못 그려도 괜찮아>라며 맘대로 막 그린 그림들을 올려서 지구인들 테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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