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영화를 비롯해 드라마, 예능 등 각종 영상 콘텐츠를 빨리 감기(를 포함해 건너뛰어 보기, 결말을 알고 보기, 요약 영상 보기, 자막으로 보기 등등)로 보는 사람들의 시청 습관에 주목해, 우리 사회 문화 전반의 트렌드 변화를 읽어냅니다. 내용이 쉽고 잘 읽히며, 곳곳에 대중문화와 사회의 변화를 감지하는 중요한 통찰들이 많아서 고객을 끄덕이게 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특히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은 봐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사람들이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이유로 제시하는 한 가지는 시간 가성비를 중시하는 태도입니다. 세상에 콘텐츠는 넘쳐나기 때문에 그걸 따라 잡으려면 빨리 볼 수밖에 없다는 거죠. 저자가 인터뷰한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기생충> 같은 작품은 온전히 감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죠. 하지만 이슈가 된 작품을 따라 만든 것 같은 영상은 정보 수집 모드로 봅니다. ‘왜 유행이지?’ 하면서요. 작품으로 보기보다는 ‘여기서 어떤 정보는 얻을 수 있을까?’ 하고 접근한다는 편이 더 가깝겠네요.” -57쪽
시간 가성비를 중시하기 때문에 영상을 2배속으로 보고,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부분은 건너뜁니다. 한 편의 영화를 다 보기보다 10~20분짜리로 요약한 영상을 보기도 하죠. 심지어는 볼 만한 작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 결말을 먼저 알기를 원하기도 한답니다.
“중간까지 보통 속도로 보다가 빨리 결말을 알고 싶어서 중간에 몇 회 정도는 건너뛰고 바로 마지막 회를 봤어요.” -49쪽
책에서 소개하는 여러 시청 방식 중에 저는 이 점이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결말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즐기려고 작품을 감상한다고 생각하는데, 결말을 먼저 알아버리면 그 재미가 떨어지지 않나요? 결말을 빨리 알고 싶어서 마지막 회를 먼저 보는 이 심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책에서는 참고가 될 만한 인상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결말을 원한다는 것이죠. 당연한 이야기일까요? 물론 그렇지만 이제는 결말이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작품 자체를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작가나 감독이 의도한 결말을 존중하고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바라는 결말대로 진행되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이지요. ‘해피엔딩이 아닌 작품은 보기 싫다’는 태도도 그런 경향을 보여줍니다.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조마조마함과 두근거림을 즐기기보다 자신이 기대하는 대로 편안하게 진행되는 걸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죠.
요즘 유행하는 ‘이세계’나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소재의 작품들이 전형적이죠. 이런 류의 작품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승리합니다. 위기나 시련도 좀처럼 겪지 않죠. 주인공이 고난을 겪는 전개는 ‘고구마’라고 욕을 먹고, 언제나 ‘사이다’ 같은 전개가 이어집니다. 제 기준에서는 고구마와 감자를 먹고 나야 사이다가 정말 시원하고 맛있어지는데 말이죠.
업계의 관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작품이나 판타지성이 있는 작품에서 주인공이 가장 강하다는 건 불변입니다. 독자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이거면 끝입니다.” (…)
하지만 X씨에 따르면 독자는 한순간도 ‘진흙탕’을 맛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2010년경에 우리 회사로 응모된 한 원고가 신인상을 받고 책으로 출간되었어요. 저도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마존 리뷰에서는 별점이 하나만 붙더라고요. 주인공이 따돌림을 당하는 이야기가 문제였던 거예요. 읽기 괴로워서 그만 읽는다는 사람이 놀랄 정도로 많았습니다.” -148쪽
이는 콘텐츠의 주도권이 작가나 감독 같은 창작자에서 소비자에게로 넘어갔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볼 것은 넘쳐나고 부족한 건 시간과 노력이니, 사람들은 바로바로 원하는 내용들이 나오길 바랍니다. 빨리 감기나 건너 뛰어 보는 것도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작품을 보겠다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창작자가 뭘 의도했든 자신이 느끼기에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뛰거나 빨리 돌리고, 자신이 원하는 내용만 집중해서 보는 것이죠. 만든 사람이 정한 순서, 호흡, 속도를 무시하고, 보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보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시청 방식이 굉장히 능동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긍정적이기만 할까요? 우리는 인생에서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치거나 때론 강제로 주어진 것에서 더 큰 보상을 얻기도 합니다. 실패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실패가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고 하잖아요?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기분 좋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처절한 비극이 더 큰 감동을 주죠. 독자가 원하는 결말만을 준다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며, 삼국지 연의는 유비 3형제의 천하통일로 끝났을 겁니다. 우리가 작품을 보는 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대신 경험하고 생각해보지 못한 것을 생각해보기 위함인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본다는 것은 그 폭을 좁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됐건,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시청 습관이 됐습니다. 그건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테죠. 사실은 저도 영화가 지루하거나 답답하거나 하면 빨리 감기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직까지는 영화를 그렇게 보진 않지만, 드라마는 종종 10초 뒤로 기능을 쓰기도 하고요. 기술과 매체의 변화에 따라 콘텐츠의 내용과 형식이 변하는 건 불가피한 흐름입니다. 그런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는지가 모든 창작자들의 고민이겠지요. 하지만 그래도 영화를 빨리 감기로 봐도 될까, 하는 의구심도 계속 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