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들끼리 일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뭘까요? 출판사마다 다르겠지만, 저희 사무실에서는 이런 말을 너나 없이 종종 합니다. “이게 표준어라고?” 편집자는 맞춤법을 꿰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수시로 사전을 검색해 봐야 합니다.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첫째는 저희가 정말 모르는 게 많기 때문이고, 둘째는 표준어가 정말로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있던 일을 예로 들어볼게요. 참새 부장님이 교정을 보시다 실소를 하시며 이렇게 말하셨죠. “참네 ‘시험공부하다’가 표준어라고 하네요.” “아니 그게 사전에 있어요?” 찾아보니 정말 국립국어원에서 발간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시험공부하다’가 표제어로 올라와 있습니다. 그 말은 ‘시험 공부하다’라고 띄어 쓰면 맞춤법으로는 틀린 게 된다는 의미죠. ‘국어 공부하다’ ‘수학 공부하다’ 혹은 ‘인생 공부하다’는 사전에 없기에 띄어 쓰는 게 맞지만, ‘시험공부하다’는 하나의 단어라서 붙여 써야 한다는 게 표준어 규정입니다. 이건 정말 이상하지 않나요?(애초에 왜 ‘시험공부’라는 단어를 사전에 올린 걸까요?)
저는 얼마전 『만화 예술의 역사』 시리즈의 4권을 마감했는데, 볼 때마다 걸리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바로 ‘공붓벌레’라는 단어입니다. 여러분도 이 단어가 어색하고 잘못된 것 같지 않나요? 저는 저 단어를 볼 때마다 ‘공부벌레’로 바꾸고 싶은 강한 충동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표준어는 ‘공붓벌레’가 맞기에 꾹 참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생긴 모습도 발음도 이상한 ‘공붓벌레’라고 적는 이유는 말 많고 탈 많은 한국어의 사이시옷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단 사이시옷의 규정을 살펴봅시다. 두 단어가 합쳐져 한 단어가 된 합성어(예를 들어 공부+벌레)에서 ①두 단어 중 한 단어가 고유어이고 ② 앞의 단어가 모음으로 끝나는 경우에 적용됩니다. 이럴 때 ③ 뒤 단어의 첫 소리가 된소리(ㄲ,ㄸ,ㅃ,ㅆ,ㅉ)로 나거나 ④ 뒤 단어의 첫소리가 ‘ㄴ,ㅁ’일 때 앞에서 ‘ㄴ’소리가 덧나거나 ⑤ 뒤 단어의 첫소리가 모음일 때 ‘ㄴ’ 소리가 덧나는 경우에 앞 단어에 ㅅ을 받쳐 적습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시겠죠?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사이시옷에는 이거 말고도 다른 규칙도 있고 예외도 있어서 도저히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곳간’이나 ‘숫자’처럼 둘 다 한자인 단어에도 사이시옷이 적용되는 건 예전부터 그렇게 썼으니 그렇다고 칩시다. 가장 큰 문제는 사이시옷 규정이 우리의 실제 발음과는 차이가 큰 데도,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강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머리말’은 ‘머릿말’이 아니라 ‘머리말’이 맞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발음할 때 [머리말]이라고 발음해서랍니다. 근데 사실 이거 발음할 때 [머린말]이나 [머릿말]로 하지 않나요? ‘공붓벌레’는 오히려 [공부뻘레]로 발음하는 사람이 없을 거 같고 말이죠. 마찬가지로 ‘인사말’도 사이시옷이 들어갈 것 같지만 안 들어가고, 정말 생소한 ‘막냇동생’은 사이시옷이 적용됩니다. 아니, [막내똥생]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가요? 이처럼 사이시옷은 너무나 불규칙적이고 실제 사람들의 언어 생활과 동떨어져 있어서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사이시옷 말고도 한국어의 표준어 규정 중엔 현실과 너무 달라 표준어를 지키는 게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습니다. 토끼는 ‘깡총깡총’ 뛰지 않고, ‘깡충깡충’ 뜁니다. 봄이 제철이고 매콤하게 양념해서 볶아먹는 연체동물은 ‘쭈꾸미’가 아니라 ‘주꾸미’입니다. 술안주로 많이 먹는 건 ‘오돌뼈’가 아니라 ‘오도독뼈’입니다. 전 여지껏 메뉴에 오도독뼈라고 적혀 있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마지막 문장에서 표준어로는 틀린 말이 있습니다. 뭔지 알아맞혀 보세요.)
물론 국립국어원도 현실을 반영하기 위해 때때로 표준어 규정을 업데이트합니다. ‘짜장면’이 비표준어였다가 표준어가 된 것이 대표적이죠. 제가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뭘 하길래?’는 틀린 말이어서, ‘뭘 하기에?’로 바꿔야 했죠. 지금은 둘 다 맞는 말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표준어라는 이유(즉 이렇게 써야 맞다고 국가가 정해놓았기 때문에)로 어색하게 써야 하는 표현들이 많습니다. 대체 표준어가 뭐길래?
그래서 출판편집자들 중에는 표준어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분들도 꽤 있습니다. 말은 시시각각 변하는 것인데 어떻게 말하고 쓸지는 언중이 택할 일이지, 규범으로 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실제로 성문화된 어문규정이 있는 나라는 남북한과 중국 정도밖에 없다고도 합니다. 분명히 표준국어대사전에 있는 단어를 따라야 한다는 건 어딘지 제국주의적이고 독재적인 냄새가 납니다. 게다가 똑같은 구조인데도 ‘지난주’는 사전에 있으니까 붙여 쓰고, ‘이번 주’는 띄어 써야 한다는 건 모순적이기도 하죠.(대체 왜?)
저도 표준어를 꼭 지킬 필요 없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원고를 교정 볼 때는 되도록 표준어대로 적으려고 합니다. 표준어 규정을 알고 있는 독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표준어에서 어긋나게 적혀 있으면 책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제가 표준어의 강박에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 책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표준어를 가르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에 맞게 적어주어야 혼란을 안 줄 수 있겠죠.
하지만 때로는 표준어를 지키지 않고 그대로 가기도 합니다. “오돌뼈를 주문했다”는 문장은 절대로 “오도독뼈를 주문했다”로 바꾸지 않을 겁니다. “재벌집 막내동생”이라고 쓰지, “재벌집 막냇동생”이라고 쓰지는 않을 거예요. 독자분들도 책에서 표준어에 어긋난 단어를 봐도 그건 편집자가 몰라서가 아니라, 더 적합한 표기를 택한 것이라는 알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