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 산 저 산을 다니다 보니, 북한에 있는 산들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왜 우린 백두산에 차 타고 못 갈까? 금강산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개마고원 트래킹을 하면 재밌겠다 등등. 통일이 되면 갈 수 있는 산이 두 배 더 늘고, 남쪽엔 하나도 없는 2000미터 이상의 산이 북쪽엔 많다는 걸 생각하면, 분단이 되어 북에 갈 수 없는 게 더 원통해집니다.
산에 가고 싶어서… 는 농담이고 전 그전부터도 북한이라는 나라의, 북한 주민들의 운명에 비교적 관심이 많았습니다. 직접 기획한 건 아니지만 예전에 북한과 관련된 2~3권 낸 적도 있고, 북한 관련한 논의에 종종 관심을 가집니다. 운명이 살짝 달라져서 1945년 언저리에 제 조상들이 마침 북쪽 지역에서 살았거나 북쪽으로 가거나 했다면, 저는 지금 북쪽에서 힘들게 살고 있겠죠.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작은 우연으로 갈라진 사람들의 삶이 남일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도서관에서 『고난과 웃음의 나라: 문화인류학자의 북한 이야기』(정병호 지음)를 보고 흥미가 생겨 빌려 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저자는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오래전부터 구호활동을 위해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했고, 탈북 청소년을 위한 학교도 설립한 인물입니다. 예전에 『극장국가 북한』이라는 책도 냈는데, 읽어보진 않았지만 상당히 주목을 받았고 저도 서평 정도는 살펴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느껴온 북한 사람들과 북한 사회의 특성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책의 제목인 ‘고난과 웃음의 나라’는 고난 속에서도 즉흥적인 유머를 발휘하는 북한 사람들의 모습을 포착한 표현입니다. 예컨대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은 국방위원장은 평양에서 판문점까지 냉면을 가져왔다고 설명하면서, “멀다고 하면 안 돼갔구나” 하는 말로 회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죠. 저자에 따르면 딱딱한 분위기에서 유머로 돌파구를 내는 건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한 북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죠. “도덕과 규율을 강제하는 사회적 압박 속에 살면서 인간으로서 자신을 지키려면 작은 틈새를 찾아서 그 틈을 헤치고 나올 수 있는 강한 내면의 생명력을 키워야 한다. 즉흥성과 유머는 꽉 짜인 도덕사회에서 인간성을 확인하고 고양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한 ‘삶의 기량’을 연마한 달인들의 ‘틈새의 해학’을 접할 때면 자유공간에서 느슨하게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은 감동하고 경외감마저 느낀다.” 저는 상당히 그럴듯하고 공감이 되는 설명이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방송 등에서 본 북한 사람들의 톡 튀는 생명력이 이해가 되기도 했죠.
저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북한 사람들의 내면이 어떤 모습이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다채로운 경험담을 통해 설명해줍니다. 개인적으로는 뒤로 갈수록 더 흥미롭고 재밌었습니다. 이론적으로만 알고 있던 북한의 이데올로기들, 이를테면 가부장주의(‘수령은 어버이이고 인민은 그 자식’)나 인종 및 민족주의(‘조선 인민은 위대한 태양민족의 후손’)가 북한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북한 사람들의 세계관과 사고구조를 약간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좋은 독서였죠. 또 자식을 1류 대학에 보내기 위한 평양 엄마들의 교육열이나, 평양과 다른 지방 사이의 격차 등 남한 사회와 비슷한 측면을 보는 재미도 있었네요.
이 책은 2020년에 나왔습니다. 희망이 부풀었던 2018년 남북정상회담과 협상이 결렬되며 아쉬움을 안겨준 2019년 북미정상회담을 지난 시점이죠. 그래도 저자는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관계를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내비칩니다. 30년 넘게 북한 사회를 대해온 사람이 갖는 긴 시야에서 나오는 인내심이겠지요.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도 더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만, 여유를 가지고 다시 남북 사이에 훈풍이 불길 기다려봅니다. 언젠간 분명 북한의 산에 갈 수 있으리란 희망을 품으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