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한 번쯤은 아찔하게 화장실을 찾았던 기억이 있을 겁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도착한 화장실 문이 잠겨 있거나 이용할 수 없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그런데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이 급박함이 단발성 해프닝이 아니라, 매일매일 마주하는 일이자 생존의 문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11월 19일 ‘세계 화장실의 날’을 앞두고 『우리들의 오줌권』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이 책은 휠체어 이용인이 출입할 수 있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거나, 있더라도 청소 도구함 등으로 쓰이며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오줌을 눌 권리에 빗대어 이야기한 김원영 변호사의 ‘오줌권’이라는 말에서 출발합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모두를 위한 화장실’ 운동을 이끌어 온 저자는 이 사소하고도 보편적인 생리 현상을 통해 우리가 일상에서 너무나 당연하게 누려 왔던 공간을 다시 바라봅니다. 화장실은 단순히 볼일을 보는 사적 공간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누구를 환대하고 누구의 존재를 지워버리는지 가늠하는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오줌권은 이동의 자유다!
휠체어와 안내견,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장벽
단 하나의 턱이 누군가에겐 장벽이 됩니다. 경사로가 있더라도 비좁은 화장실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고, 장애인 화장실이 있더라도 잠겨 있거나 청소 도구가 쌓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책은 화장실을 찾아 수 킬로미터를 이동하고, 화장실 갈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마실 물조차 마다하는 사람들의 ‘현실’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리고 이에 그치지 않고 시각 정보 위주로 짜인 공공시설에서 화장실을 찾아 헤매는 시각장애인, 그리고 비시각장애인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안내견을 위한 화장실의 필요성까지 파고듭니다. 물리적 접근성을 넘어 정보 접근성까지 확장하여 사회의 모든 곳으로 향할 수 있는 진정한 이동의 자유가 무엇인지 묻습니다.
오줌권은 일터의 정의다!
방광염을 키우는 성과 중심주의 노동
성과와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화장실에 갈 자유마저 박탈당한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콜센터 상담원, 물류센터 노동자, 택배기사, 간호사, 백화점 판매직, 그리고 남성이 대다수인 건설 현장의 여성 노동자들까지, 많은 노동자가 일하는 동안 화장실에 자유롭게 가지 못해 방광염 등 직업병을 앓습니다. 이 책은 생리 현상까지 참아내며 더 많이, 더 빨리 일하는 것이 미덕이 된 일터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강력하게 촉구합니다.
오줌권은 안전과 공존의 기초다!
불법 촬영의 공포와 성별 이분법이 놓치는 사람들
여성에게 공중화장실은 여전히 불법 촬영과 범죄의 공포를 마주하는 두려운 장소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여성 화장실’이라는 표지판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성별 이분법적 구조에 갇힌 화장실은 트랜스젠더 등 외형만으로 성별을 단정하기 힘든 사람들은 물론 이성 가족을 돌보는 사람들을 공공영역에서 배제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저자는 여성들이 느끼는 불안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진정한 ‘안전’이 어디에서 오는지 살핍니다. 누군가를 배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해법임을 이 책은 예리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로 다시 쓰는 우리 모두의 권리
이 책은 장애인, 노동자, 여성, 성소수자 등 오줌권을 쉽게 누리지 못하는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바탕으로 이동권, 노동권, 건강권, 안전권, 그리고 시민권을 촘촘하게 엮어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해법으로 ‘모두를 위한 화장실’을 제시합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은 성 중립 화장실로 설계됩니다. 이를 통해 트랜스젠더는 물론 성별이 다른 돌봄 제공자와 동행하는 사람들도 편히 출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을 적용한다면 공간의 가능성까지 넓어집니다. 예를 들어 휠체어가 여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넓은 공간과 지체장애인을 위한 안전바는 물론, 장루·요루 주머니와 월경컵을 세척할 세면대를 둘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영유아용 기저귀 교환대를 확장해 성인용 침대형 기저귀 교환대를 놓는다면 나이가 들거나 질병으로 인해 기저귀를 착용하는 사람들도 편히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시각과 청각 모두를 고려한 안내 및 경보 시스템 등을 활용해 모두의 안전을 보장할 수도 있습니다.
“한때는 여자 화장실도, 장애인 화장실도 당연한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배제되어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를 말하고, 사회가 그 목소리를 제도와 설계에 반영하면서 지금의 기준이 만들어졌습니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 역시 기존의 화장실을 없애자는 제안이 아니라, 지금의 선택지로는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하나의 선택지를 더하자는 제안입니다. 변화는 언제나 낯설게 시작되지만, 누가 그동안 이 공간을 이용하지 못했는지 알아보고, 배제되어 왔던 사람들을 당연한 이용자로 상상하고 계획하는 순간부터 공간의 기준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_본문 중에서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청결하지 않은 공중화장실이 허다했고, 장애인 화장실은커녕 여성 화장실조차 부족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우리는 청결하고 편안한 공중화장실 체계를 갖췄습니다. 화장실의 모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다음의 화장실은 어떠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질 때입니다. 책에 담긴 다양한 국내외 사례는 변화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가장 사적인 동시에 가장 정치적인 공간, 화장실을 통해 우리의 일상과 권리를 묻는 이 책이 차별 없는 세상의 초석이 되길 바랍니다. 안도와 환희의 공간을 우리 모두에게!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만들어 갈 미래에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