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으려면
1월에 산에 갔다가 내려오던 길이었습니다. 옆에서 걷던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어요. 마침 현대차가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해 화제가 된 시점이었는데, 그 둘은 그 로봇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차 노조에서는 로봇이 공장에 들어오는 걸 막겠대.” “그걸 걔네가 무슨 권리로 막아? 지네 공장이야?” “몰라 자기들 일자리 지키겠다는 거지, 그러다 도태될 텐데.”
순간적으로 좀 울컥했어요.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반박하고 싶었습니다. “아니, 그럼 여러분은 로봇 때문에 자기 일자리가 없어져도 수긍하고 물러나실 거예요? 그게 세상이 발전하는 거니까?” 속으로만 하고 말았지만, 그 후에도 ‘합의 없인 로봇 1대도 못 들어온다’고 입장을 밝힌 현대차 노조에 대한 비난과 조롱을 여러 곳에서 접할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기술발전에 반대하며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러다이트 취급을 받았죠. 이재명 대통령도 “흘러오는 거대한 수레를 피할 수 없다”면서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는 투로 말했습니다.
저는 일자리를 지키려 하는 노조의 주장이 그렇게 조롱을 받아야 할 것인지 잘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기술발전을 찬양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결국 세상에 더 도움이 되니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게 사실이더라도 왜 그에 따른 피해를 일부 노동자가 떠안아야 할까요? 그렇게 AI 등 새로운 기술 도입으로 전체 사회가 이득을 얻는다면, 그로 인해 실직이나 소득 감소를 겪는 이들의 피해도 전체 사회가 함께 져야 하지 않을까요? 거대한 수레가 오는 걸 막을 순 없을지라도, 수레를 피할 수 있게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조정할 수는 있지 않을까요? 또 누군가를 밟고 가는 게 아니라 수레에 함께 타고 간다면 어떨까요?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의 『권력과 진보』는 이런 고민을 담은 역작입니다. 두 사람은 이 책에서 권력이 어떻게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하는지,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어떻게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기술은 가치중립적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며, 그 시기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의도에 영향을 받아 경로가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 발전으로 누가 이득을 보고 손해를 입는지도 그 사회의 구조와 설계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즉 기술 발전은 저절로 진보를 가져오지 않으며,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이 책의 주된 논지입니다.
오늘날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상보다 생활 수준이 높은 이유는 우리 앞에 있었던 산업 사회 국면들에서 시민과 노동자가 스스로를 조직해 테크놀로지와 노동 여건에 대해 상류층이 좌지우지하던 선택에 도전했고, 기술 향상의 이득이 더 평등하게 공유되는 방식을 강제해 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일을 우리가 다시 해야 한다. -19쪽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왜 현대차 노동자들은 로봇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없어진다고 생각했을까요? 꼭 그렇게만 되어야 할까요? 로봇이 위험한 작업에 도입되고, 안전관리에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는 그런 분업은 안 될까요? 일자리를 줄이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과 피로를 줄이는 로봇 기술이 개발될 수는 없을까요? 사회 전체적으로 로봇이 인간이 지금 하는 일을 많이 대신하고 생산성을 높인다면, 노인이나 몸이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면 어떨까요. 돌봄노동은 지금도 사람이 부족하며 그 어떤 AI보다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그것이 “기술 향상의 이득이 더 평등하게 공유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AI의 발전을 두려워하는 건 지금 사회의 구조와 권력이 그렇게 안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기술이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는 모습을 더 많이 봐왔으니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의 ‘권력’이 노동자와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기업가, 경영자, 테크 거물 들에게 있으며 그들이 기술 발전의 경로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술의 진보가 곧 사회의 진보일 것이라고 장밋빛으로 분칠하지만, 이 책은 수백 년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반박합니다.
그래서 저자들이 강조하는 건 ‘길항 권력’입니다. 기업가, 경영자, 테크 거물 들에 대항해 테크놀로지의 발전 방향에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누가? 노동자, 시민, 그리고 대중에 편에 서는 정치인 등이 그런 길항 권력이 될 수 있습니다. 합의 없이는 로봇을 공장에 도입해선 안 된다는 현대차 노조도 그런 길항 권력이겠고요. 이런 움직임은 기술 진보를 막으려는 시대착오적 행동이 아니라, 기술 진보를 사회적으로 이롭게 만들려는 시도라고 봐야 합니다.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노동 대중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더 이상 임금을 내리누를 수 없게 되었을 때에서야 다수의 인구가 훨씬 더 나은 결과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공장주와 부유한 지배층에 맞서 일터에서, 이어서 정치 영역에서 길항 권력이 발달하면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공중 보건과 인프라의 개선을 촉진했고 노동자들이 더 나은 노동 조건과 더 높은 임금을 협상할 수 있게 했으며 테크놀로지 변화의 방향이 재설정되는 데 기여했다. -264쪽
이 책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기술 발전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가능성이 열려 있는 미래라는 것이지요. 테크놀로지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는 기업가와 경영자만이 아니라 그에 영향을 받는 더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저는 그 목소리를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