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통신] 당신은 남성 영웅을 좋아하나요, 여성 영웅을 좋아하나요?
🙋[잠깐 우리책 홍보]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
📖[심심한 독후감] 다른 사람 앞에만 서면 얼어 버리는 사람
🖌️[못 그려도 괜찮아] 애플 수박-생태 정원 텃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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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통신
당신은 남성 영웅을 좋아하나요, 여성 영웅을 좋아하나요?
by 들풀🌱
어떤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지만 전 여러 가지 생각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한 조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 책의 내용에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서 어떤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고 독자의 생각을 뻗어나가게 한다면, 그런 책은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나온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는 작업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이제 책이 나왔으니 그 재미를 독자 여러분도 같이 느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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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여성 영웅은 여성이 아니다라는 점일 듯합니다. 달리 말하면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쓴다고 해서 그게 곧 여성 영웅의 서사가 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이 책은 주인공의 성별이 아니라 이야기의 성격을 가지고서, 여성 영웅의 여정과 남성 영웅의 여정을 구분합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여성 영웅의 여정은 연대, 도움, 위안, 성취의 분배를 강조하는 서사이며, 남성 영웅의 여정은 일대일 대결, 승리, 영광, 단독의 성취를 강조하는 서사이죠.
저는 이런 구분 방식이 적어도 서사의 성격이라는 측면에서는 합리적이고 명쾌하다고 느껴졌어요. 예를 들어 남성이 주인공인 영화에서 단순히 주인공의 성별만 바꾼다고 그게 남성 서사에서 여성 서사로 바뀔까요? 이야기의 목적, 전개 방식, 메시지 등 전반적인 구조 자체가 달라져야 서사의 성격이 바뀌겠지요. 주인공의 성별만 가지고서 여성 서사냐, 남성 서사냐 나누어 논하는 건 뭔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비유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단순히 성별이 여성인 정치인이 당선되는 게 여성 정치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미묘한 주제이긴 합니다만, 여성 정치인이 오히려 페미니즘의 가치를 훼손하고 부정하는 경우라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주인공의 성별에 집착하지 않고, 그 이야기가 어떤 주제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이 책의 방식에 끌렸습니다.
그렇게 정리를 했을 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여성 영웅이 여성이 아니고 남성이 될 수도 있다고 하면, ‘여성 영웅’이라는 단어는 혼란을 줄 수 있지요. 이야기를 생물학적 성별을 기준으로 분류하지 않는다면, 사실 그 구분에 성별을 나타내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게 더 타당할 겁니다. 그래서 책에서 사용되는 ‘여성 영웅(Heroine)’과 ‘남성 영웅(Hero)’이라는 용어를 다르게 바꿔야 할지 고민을 좀 했습니다.
원문인 영어에서는 이런 혼란이 다소 덜 한 것 같습니다. Hero와 Heroine에서 성별의 뉘앙스가 한국어처럼 강하게 나지는 않고, 특히 Hero는 성별 중립적으로 사용되어서 female hero라는 표현도 이상하지 않지요. 한국어에서도 영웅은 성별 중립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문제는 Heroine이었어요. 이를 표현할 만한 성별 중립적인 단어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Hero(영웅)와 대비해서 사용할 때 Heroine을 ‘여걸’로 번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또한 여성에 한정되는 단어였죠. Hero는 영웅으로, Heroine은 그냥 ‘히로인’으로 쓰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히로인이 대개 남성 주인공의 상대역을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되어서 맞지 않았습니다. 유력하게 고민했던 건 성별을 확정하지 않고 ‘남성적 영웅’과 ‘여성적 영웅’으로 표현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말이 좀 지저분해 보이고(그리고 살짝 회피하는 게 비겁하게 느껴지고), 역시 이분법에 근거한 표현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결국 Heroine을 ‘여성 영웅’으로 Hero는 ‘남성 영웅’으로 옮기는 거로 정했습니다.
사실 ‘영웅’이라는 표현도 오해가 있을 수 있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웅은 꼭 슈퍼맨, 원더우먼 같은 슈퍼히어로만을 가리키는 건 아니거든요. 폭넓게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 중심 캐릭터’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조지프 켐벨이 전 세계 신화를 분석해서 제시한 ‘영웅의 여정(Hero’s Journey)’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영웅’이라는 표현을 쓰는 거지, 그냥 주인공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여성 영웅 서사의 세계’이지만 특수한 능력이 있는 대단한 그런 영웅의 서사만을 다루는 건 아니고, 대중문화 일반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 점을 일러두기로 밝혀둘까 하다가, 책을 읽으면 알게 된다고 생각해서 그냥 두긴 했는데 책 소개만 봐서는 다소의 오해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편집 일을 하다 보면 언어가 생각을 속박하고 제한하는 힘이 대단하며, 적확한 단어로 오해 없이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자주 느낍니다. 그걸 잘했다면 이 레터에서 이렇게 주절거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
원래 이 책의 재미를 알아달라고 쓰려고 했는데, 다른 말이 길어졌네요. 그 얘기로 넘어가볼게요.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자기가 재밌게 본 작품들을 여성 영웅의 여정과 남성 영웅의 여정으로 나눠보고 왜 그런지 분석해보는 겁니다. 저는 어릴 때 재밌게 본 <드래곤볼>의 손오공은 남성 영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성 영웅은 보통 적을 이기거나 대단히 중요한 보물을 찾아내는 데 관심이 있다”(8쪽)고 하는데 손오공은 말 그대로 싸움을 좋아하는 전투민족이죠. 또 “그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성공하기 위해 문명과 가족이라는 제약을 버려야 한다”(9쪽)라고 하는데, 손오공은 가족에게 아주 소홀하고 수련한다고 친구들과 잘 만나지도 않지요. “그는 자기가 구한 세계에 도로 어울리기에는 너무 강력해져버렸”(10쪽)습니다. 중간에 멘토 역할의 무천도사가 사망하는 것이나, 친구 크리링의 죽음으로 각성하는 것도 아주 남성 영웅스럽죠.
<드래곤볼> 못지 않은 대인기 만화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어떨까요? 제 생각에 그는 남성 영웅이었다가 여성 영웅으로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초반에 그는 폭력적이고, 협력할 줄 모르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점차 팀워크를 배워서 협력하게 되죠. “여성 영웅의 힘은 그녀의 네트워크에 있기 때문에”(155쪽) 동료가 늘어날수록 강백호와 북산은 강해집니다. 마지막 경기에서 승부를 결정 짓는 플레이가 서태웅의 패스이고, 둘의 하이파이브로 끝난다는 건 상징적이죠. 스포츠물은 팀플레이를 중시하는 특성 때문에 여성 영웅의 여정으로 흘러갈 때가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포츠 만화 팬 중에 의외로 여성이 많은 것도(예를 들면 여성 독자가 다수인 배구만화 <하이큐>) 그런 이유일 듯하고요. 요즘 여성 야구팬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유튜브와 SNS를 통해 팀의 서사가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흥미롭게 생각한 또 하나의 사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이에요. 전 이 작품은 여성 영웅(안나)이 남성 영웅(엘사)을 구원하는 내용으로 분석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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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는 강력한 마법의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죠.(“우리의 남성 영웅에게는 주로 기적적인 잉태, 반신적인 탄생, 혹은 유전적인 특수성이 있다.”) 엘사는 자신의 힘이 다른 사람을 해칠까 봐 감추고 살다가 그 비밀이 밝혀지면서 홀로 떠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기로 하죠. 혼자서 여왕으로 변해가는 ‘렛잇고’의 장면을 떠올려보세요.(“남성 영웅은 자신의 공동체를 포기하고 퀘스트를 시작한다.”) 고립이 곧 강함을 뜻하는 건 남성 영웅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하지만 엘사에게는 그녀를 고립에서 구하려는 동생 안나가 있죠.(“모든 여성 영웅의 여정에서 핵심적인 순간은 가족의 균열이 발생하는 것으로, 그것이 그녀를 행동으로 몰아넣는다.”) 안나는 사라진 언니를 찾기 위해 (나중에 연인이 되는) 남자 인간, 순록, 눈사람과 함께 얼음 성으로 향하죠.(“우리의 여성 영웅은 두 번째 가족을 찾고 관계 네트워크를 확장하려는 욕구를 끊임없이 추구한다.”)
하지만 엘사가 거부하며 안나는 얼음 파편이 심장에 박히고 점점 얼어붙어 갑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의 행동’이 얼어붙은 심장을 고칠 수 있다는 조언을 듣죠. 그럼 진정한 사랑의 행동이란 무엇일까요? 마지막 위기의 순간에 엘사를 지키기 위해 안나가 칼을 막아서는 행위가 그것입니다!(“여성 영웅은 무엇을 가장 하고 싶어 하는가? 보호다.”) 이 행동으로 안나의 몸은 녹고 엘사는 사랑의 힘을 깨닫게 됩니다. 그 덕분에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제어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죠. 깨진 네트워크가 더 크고 강하게 재건되고, 가족이 재통합됩니다. 여성 영웅의 승리입니다.
“그들[남성 영웅]에게는 불행하게도, 만약 그들이 들어간 이야기가 여성 영웅의 여정이라면, 그들은 결국 여성 영웅의 사랑이나 우정으로 인해 그들 자신의 영웅적 행위(고독한 행동)로부터 구원받을 수밖에 없다.” -235쪽
이런 식으로 대중문화를 바라보자 한 이야기 안에도 남성 영웅과 여성 영웅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고 둘의 여정이 잘 교차할 때 극에 긴장감과 재미를 더해준다는 걸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익숙하게 알고 있던 작품들을 여성 영웅의 여정(그리고 남성 영웅의 여정)이라는 틀로 분석해보면 재미도 있고 새로 깨닫게 되는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징어게임 3>가 많은 실망을 준 것은 주인공이 자신의 여정을 정하지 못하고 헤매다가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실패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시즌 1은 최후의 승자가 되어 큰돈을 얻었지만 고독해진 남성 영웅의 여정을 밟았다면, 시즌 2와 3에서는 동료들과 함께 오징어게임 주최 측을 무너뜨리려는 여성 영웅의 여정이 실패하고 자신도 살아남지 못하는 결말을 맞이했죠. 어느 여정의 애청자도 만족시키기 힘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이 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이런 재미를 느끼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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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우리 책 홍보~🙋
홀로 승리할 것인가, 함께 나아갈 것인가, 연대와 돌봄의 네트워크를 찾아 나서는 여성 영웅이 온다 🌌🧭
연대🤝, 도움🙋♀️, 위안💞, 성취의 분배🎁를 담는 여성 영웅의 서사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 『 여자는 우주를 혼자 여행하지 않는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왜 지금 우리 세상에 여성 영웅의 이야기가 더 많이 필요한지도 알 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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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의 책꽂이 26화
다른 사람 앞에만 서면 얼어 버리는 사람
전 배우, 현 출판사 대표인 박정민 씨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산 책들이 화제입니다. SNS 여기저기에 소식들이 돌아다니고, 어느 웹서점에서는 이벤트 페이지까지 만들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며칠 전, 퇴근해서 집에 들어갔더니 와이프가 저보고 다짜고짜 “당신도 배우 하다가 출판 일 하지 그랬어.” 하더라니까요. 참 나, 어이가 없어서… 그러거나 말거나 책 세계에 힘을 보태는 사람이 조금씩 느는 것 같아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에요. 박정민 대표님, 힘내시길.
이런 유행에 편승하여 저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산 책으로 독후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향력이 제로로 수렴하는 무명의 편집자여서 책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겠지만, 일단 트라이~ 어떤 책으로 쓸까 잠시 고민하다가 고른 책은 『고장 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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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떠오른 건 얼마 전에 본 한 방송이 뇌리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이들 아실 거예요,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이하 모솔연애)를. 그동안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지만 저는 별 관심 없었어요. 유일하게 <신들린 연애>를, 독특한 콘셉트 때문에 한두 편 보고 만 게 다였지요. 남의 연애에 별 관심이 거의 없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솔연애>는, 와이프가 “이거 한번 볼까?” 했을 때, 그 신박한 콘셉트에 사로잡혀 버렸어요. 어쩌면 저 역시 서른 즈음까지 모태솔로나 다름없었던지라, 제 청춘이 순식간에 오버랩되면서 방송에 빨려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솔연애> 출연자 중 제가 가장 눈여겨본 사람은 극도로 내향적인 남성 출연자 J입니다. J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내성적이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듣고 자랐고, 그 덕분인지 J가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어느 정도 이해되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와, 저건 너무 하네.” 하고 말하기도 했지만 속으로 계속 J를 응원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고장 난 기분』은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으면 얼어 버리는 저자가, 자신의 고장 난 경험들과 그 상태에서 나아지는 연습을 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책입니다. J와 저자가 비록 성향은 다를지라도 보이는 행동에서 서로 공통되는 게 보여 이 책이 떠오른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이런 때 자신이 고장 난다고 얘기합니다. 청중으로 앉아 있다가 마이크가 넘어왔을 때, 회의 시간에(온라인 회의도 예외 없음), 심사를 받을 때, 본인 책 북토크 때 등등. 이런 순간이 오면 가슴은 쿵쿵쿵 뛰고, 머리는 하얘지고, 몸은 굳고, 말은 더듬고… 한마디로 얼어 버립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내향적인 건 아니에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상대의 표정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고, 상대를 웃기기 위해 말 고르는 것도 좋아해서, 스스로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죠.
그렇지만 주목을 받으면 얼어 버리는 거예요. 얼어 버릴 때 저자의 마음은 “말하는 즉시 평가될 거라는 두려움, 뭔가를 잘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망, 주목받는 것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한마디로 저자는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에 너무 많이 신경을 써서 얼어 버리는 거죠. 남이 아니라 남에게 보이는 자기 자신에게 과몰입한 나머지 어는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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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저자는 오랫동안 자신이 남에게 잘하려고 애쓰다 보니 얼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었던 것인데, 우연한 기회로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면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한번은 자신이 떨면 남에게 비난받을 것 같다고 얘기하는 저자에게 상담가가 “그럼 전지(저자 이름) 님은 떠는 사람을 보면 어떤 감정이 드세요?” 하고 묻습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저자는 급기야 눈물을 흘리며 “안쓰러워요.” 하고 답합니다. 상담가는 “다른 사람도 비슷하게 느낄 거예요.” 하고 얘기합니다. 또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얼지 않도록 도와주는 약을 처방받아서 얼어 버리는 상황에 먹기 시작한 저자가 상담가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저 이번에는 약 안 먹고 해 보려고요.” 이에 상담가는 “좋아요. 그런데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되는 걸로요.” 하고 답합니다. 상담을 마치고 집으로 오면서 저자는 생각하죠. ‘나 또… 칭찬받고 싶었네. 왜 자꾸 그래… 아니다. 아니다. 수용하자. 그럴 수 있어. 이제 안 그러면 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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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계기들이 쌓이면서 저자는 천천히 변해 갑니다. 회의하다가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면 “저 잠깐만요. 좀 떨려서…” 하고 양해를 구하고서 진정되면 이야기를 다시 이어 가고, 북토크에서 떨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청중의 머릿속엔 자신에 대한 부정적 평가뿐 아니라 ‘티셔츠가 편해 보이는군.’(딴생각), ‘저렇게 생각하는구나.’(내용에 집중), ‘힘든 일이 있으신가?’(염려) 등 다양한 생각이 떠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떨고 살짝 얼지만요. 그렇지만 그러한 현재의 자신을 수용하고, 자기가 현 상태에 멈춰 있지 않고 점점 편안해질 것을 굳게 믿습니다. 생각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직시하고, 똑바로 기억하고, 바르게 노력하는 것이죠.
언젠가 대학 친구와 대화하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요새 이런 생각을 해.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을 나에게 더 큰 자유를 허락하는 거 아닐까 하는.” ‘남에게 보이는 나’에 지나치게 신경 쓰며 사는 저는, 40년 넘게 그 굴레에 꽁꽁 매여 있다가 몇 년 전에야 비로소 조금씩 ‘나’라는 궤도에서 슬쩍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지점에 있는 기분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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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솔연애> 중간 회차에서 J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 줍니다. 호감을 느끼는 여성 출연자가 J의 어이없음에 대해 얘기하는 장면을 안 보이는 데서 우연히 마주친 J가 들키지 않기 위해 풀밭에 납작 엎드린 것이죠. 그때까지 J의 잘못을 지적하던 패널들은 순간 얼어 버립니다. 저도 말문이 막혔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패널들도 이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J는 내 상식의 범주에 있지 않구나. 잘난 체하며 J의 모자람을 지적하던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 사건 뒤 패널들의 태도는 180도 변합니다. 신기하게도 J 역시 변하기 시작합니다. 뭐랄까, 자기 자신에게 좀 더 편해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달까?
최근 J의 모솔 탈출 소식을 접했습니다. 제 일처럼 반갑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숨을 편하게 내쉰 것 같습니다. 우리 조금 느슨해져 봐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꽉 조이면 숨이 막히잖아요. 이 더운 여름에 숨이라도 편하게 쉬면 좋겠습니다.
리넨 질감 바지에 샌들을 신고 출근한 전 모범생
편집자 참새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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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섶에 숨어서 몰래 크고 있는 녀석 발견~
애플수박, 밭에서는 처음 보는 지구 생명체다.
너를 그려서 SNS 세상에 올려줄게!
그림보다 더 귀엽고 이쁘다구?
내가 너를 고쳐 그리면
더 엉망 되는 거 알고는 있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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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이 없었습니다~😭
모두 휴가 가셨나 봅니다~ 다음번 답장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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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Letter~📮
오늘이 마침 입추랍니다. 가을의 문턱이라지만, 사실 24절기는 2000년 전 중국 북부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오늘날 한국 기후와는 맞지 않습니다. 보통 한국은 2주 쯤 후인 처서가 되어서야 선선한 기운이 감돌고, 요즘엔 온난화의 영향으로 그보다 더 여름이 오래 가지요. 그럼에도 오늘 아침 공기는 한결 시원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해는 점점 짦아질 것이고 더위 고비는 넘은 것 같습니다.
전 여름엔 야외활동이 힘들어서 좋아하진 않지만, 여름에만 잘 즐길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해변과 계곡에서의 물놀이, 빙수와 아이스크림의 맛, 수박의 시원함, 가슴도 부풀게 하는 적란운. 에어컨 나오는 도서관에서의 독서도 그중 하나이고요. 남은 여름 충분히 즐기시길 바랍니다~.
(여름의 연꽃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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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뉴스레터, 누가 보내는 거야??👀
🐦편집자 참새
아침에 공원에서 한 똘똘한 참새를 만난 뒤로 틈틈이 참새를 지켜봅니다.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물을 자주 마십니다.
🌱편집자 들풀
책, 술, 산을 좋아하는 편집자. 초등학교 때 한 주에 한 번 동네에 오는 이동 도서관 덕분에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 보지 않을 책은 사지 않는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계인. SNS에서 지구인들 탐색하면서 지구인인 척 댓글 놀이를 하고 있음. 모 출판사에서 비밀요원으로 암약중이며, <못 그려도 괜찮아>라며 맘대로 막 그린 그림들을 올려서 지구인들 테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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