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 통신] 접, 제, 축, 톳, 연... 이게 다 무슨 말?
📖[심심한 독후감] 착한 척은 지겨워
🖌️[못 그려도 괜찮아] 썰매 타는 박새-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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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 통신
접, 제, 축, 톳, 연... 이게 다 무슨 말?
by 들풀🌱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들어갔는데, 집 안에 마늘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어머니가 마늘을 까고 갈고 계셨어요. 다음 햇마늘이 나올 때까지 쓸 양을 갈아서 얼려 두고 쓴다고 하셨죠. 얼마나 까셨냐고 물으니 “반 접”을 깠다고 말씀했습니다.
접은 마늘을 세는 단위입니다. 통마늘 100개가 한 접이 되지요. 왜 접이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예전부터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접이라는 단위를 들으니 재밌어서, 어머니랑 이런저런 물건 세는 단위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말에는 이런 다양한 단위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오늘은 그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생선을 샐 때 쓰는 ‘두름’이라는 단위는 지금도 종종 쓰고 있습니다. 보통 ‘굴비 한 두름’이 많이 사용되지요. 한 두름은 스무 마리입니다. 생선을 새끼줄 같은 걸로 줄줄이 엮은 걸 두름이라고 하는데, 이걸 대개 두 줄로 10마리씩 엮다 보니 1두름=20마리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징어 스무 마리는 한 ‘축’이라고 해요. 또 북어는 한 ‘쾌’가 스무 마리고요. 축과 쾌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요?
집에서는 아무래도 스무 마리씩은 잘 사지 않으니 두름, 쾌, 축은 많이 쓰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 “고등어 한 손 주세요”라는 주문은 지금도 많이 하지요. 손은 하나가 두 마리입니다. 두 마리를 한 손으로 들고 갈 수 있어서 한 손일까요? 김 한 톳(100장)도 여전히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도 김을 파는 기본 단위로 많이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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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름은 두루두루 엮어서 두름일까요?)
곡물을 셀 때는 되, 말, 섬을 빼놓을 수 없지요. 열 되가 모이면 한 말, 열 말이 모이면 한 섬이지요. 되는 쌀 등을 풀 때 쓰는 됫박의 용량에 해당합니다. 현대식 단위로는 1.8리터 정도 되는데, 1.8리터 페트병이 이 됫박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많이 마르고 허약했는데, 집안 어르신들이 “약 한 제 해 먹여야겠다”고 하셨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한 제는 한약 스무 첩입니다. 아 참, 제를 설명하려면 첩도 설명해야겠군요. 한 첩은 약을 한 번 달일 양만큼 종이에 싼 것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포장된 한약재를 받아와서 집에서 직접 달여 먹였죠. 지금은 거의 대부분 한의원에서 바로 비닐 파우치에 담아서 주니 “약 한 제(또는 첩) 해주세요” 정도의 관용적 표현으로만 남아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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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이 봉지 하나가 한 첩이지요. '첩약 건강보험'이라는 용어에서도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
이번에 얘기하다가 새로 알게 된 것들도 있었습니다. 바늘 24개는 한 ‘쌈’이라고 한답니다. 어머니는 결혼하실 때 바늘 한 쌈을 가져오셨다네요. 지금도 반짓고리함에 그 바늘들이 남아 있습니다. 버선 10켤레를 의미하는 ‘죽’이라는 단어도 있답니다. 지금은 버선 자체도 보기 힘드니 이 단어는 사라져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볏단을 셀 때는 ‘뭇’이라는 단위로 센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으니 들어보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좀 더 친숙한 단어들을 이야기해볼까요? “제 나이가 계란 한 판이에요”라는 표현은 누구나 알겠지요. 계란을 담는 판이 30개씩 담다 보니 계란 한 판=30개가 굳어졌습니다.(그런데 왜 ‘달걀 한 판’은 어색할까요?) 요즘도 연필을 한 다스씩 파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다스가 12개라는 것도 굳어졌지요. 담배 한 보루가 열 갑이라는 것도 흡연자라면 기본 상식이겠고, 비흡연자인 저도 안답니다. 또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 짝이 20병이라는 걸 알 겁니다. 아닌가요?
출판사에서 쓰는 특별한 단위도 소개합니다. 저는 이번에 『나는 새들이 왜 노래하는지 아네』 인쇄에 들어가면서 표지용 종이를 1.5연, 본문용 종이를 82연 주문했습니다. 여기서 ‘연’은 종이의 단위로 1연은 500장입니다.(a4 같은 종이가 아니라 큰 전지죠) 종이 회사에서 기본 포장이 500장씩 되어 나옵니다. 연(連)은 ream이라는 영어에서 왔다고 왔다고 하는데 아마도 한자음을 빌려 연이라고 하게 된 것 같습니다. 000쪽짜리 책을 0000부 찍을 때 종이가 몇 연이 필요한지 계산하는 것이 편집자가 신입 때 어려워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사실 지금도 가끔 헷갈려서 여러 번 체크해보곤 합니다)
이 다양한 단어들은 실생활에서 묶음의 단위로 사용되면서 자연스럽게 익혀졌을 것입니다. 생활에서 사용할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단위가 왜 필요한지 의문스럽고 번거롭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확한 숫자로 통일해서 표현해도 의미 전달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늘 100개 주세요’ 하는 것보다 ‘마늘 한 접 주세요’라고 하는 게 더 우아하게 느껴집니다. ‘아들이 오니 고등어 두 마리라도 사와야지’보다 ‘아들이 오니 고등어 한 손이라도 사와야지’가 더 정감 있고, ‘선물로 받은 연필 12자루’보다 ‘선물로 받은 연필 한 다스’가 더 친근합니다. 매끄럽고 평평한 숫자에서는 그 단어들에 담긴 생활의 굴곡과 질감이 지워져버리지요. 이게 제가 어머니의 ‘마늘 반 접’에 반색한 이유인 듯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약 한 제’에 담겨 있는 사랑과 ‘바늘 한 쌈’에 담겨 있는 노고가 사라져 가는 것도 아쉽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독특한 단위를 알고 계신가요? 같이 공유해보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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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의 책꽂이 22화
착한 척은 지겨워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를 쓴 우치다 다쓰루는 서점/도서관에서 목적 없이 어슬렁거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책을 사야지/봐야지 하고 딱 정해 두기보다는 ‘구경이나 해야겠다’ 하는 느슨한 마음으로 서점/도서관에 들러 기웃거리다 보면 운명처럼 책을 만나게 된다는 거예요. 이쪽(나)에서 책을 찾은 게 아니라 저쪽(책)에서 나를 콕 집어 “이리 오라”고 부르고, 이쪽에서는 그 부름을 거역할 수 없는 그런 만남이 이루어진다나요. 요새는 목적 구매/대여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런 만남이 줄었지만, 책을 꾸준히 보는 분들은 우치다 선생의 저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실 거예요. ‘이 책을 봐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기 전에 그 책을 어떻게 만났는지 돌아보면 더 분명해지죠. 웹서점을 산책하거나 뉴스레터를 힐끗거리다가 평소 관심 있던 분야나 주제도 아니고 관심 두던 저자도 아니고 아무튼 나와는 접점이 없다고 할 법한 책에 속절없이 꽂혀 버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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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는 『착한 척은 지겨워』도 그런 경우입니다. 지난주에 빌릴 책이 있어서 퇴근길에 종로도서관에 들렀어요. 찾던 책이 보존 서가에 있어서 사서에게 찾아달라 부탁하고 무심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던 찰나, 3미터쯤 떨어진 서가 어느 지점에서 어떤 책이 ‘나 여기 있어’ 하고 저를 불렀어요. 홀린 듯 몇 걸음 옮긴 뒤 책등을 보니 김한민 작가의 책이었죠. ‘착한 척은 지겨워?’ 책 제목이 잠시 머릿속에서 맴돌다가 뭔가 불씨 같은 게 탁 하고 텄습니다. ‘착한 척이라… 이제 나도 슬슬 지겨워지려고 해!’ 이내 책을 꺼내 들어 그 자리에서 몇 장 넘겼습니다. 아주 화끈한 책이었어요. 빌리지 않을 수 없었죠.
저는 우리 시대의 긴급한 사안을 도발적이고 급진적으로 다루는 되바라진 글을 잘 읽지 못합니다. 그런 글을 읽으면 지금 당장,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투신해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요. 동시에 겁 많은 아저씨가 고개를 들고서는 뻔하디뻔한 얘기를 시작하죠. “식구들은 어떻게 할 건데? 늙어서 힘들걸? 넌 그런 용기가 없잖아.” 며칠 머뭇거리다가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일상을 이어 나가고, 그럴 때마다 ‘이렇게 살다가 말라 죽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초라한 제 모습에 실망하고 맙니다. 이쯤 되면 질병이라 불러도 될 만큼 이십 년 넘게 이어져 온 고정 패턴이에요. 반복될 때마다 무기력에 빠져 힘들다 보니 저를 뒤흔드는 글을 저도 모르게 피하고는 합니다.
『착한 척은 지겨워』는 그런 책이었어요. 저를 격하게 일깨우는 책. 평소 같으면 못 본 척 뒤돌아섰을 책. 하지만 이번에는 불씨가 일어서 제 딴에는 용감하게 집어 들었죠. “이것은 지난 6개월간의 회고록이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먹고사니즘에 붙잡혀 살다 직장을 때려치우고 유학을 준비하던 ‘내’가 급진 생태운동가 ‘마야’와 함께하면서 머뭇거리는 사람에서 행동하는 사람으로 바뀌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나의 눈에 엔지오계를 벌집 쑤시듯 헤집어 놓는 공포의 시위꾼 마야가 들어옵니다. 이내 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죠. ‘저 사람을 돕고 싶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마야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킵니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동행. 마야는 나에게 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 제목은 『우쭈쭈의 사회학』. 내용은 다음과 같이 거칠게 요약됩니다. 현대인은 쓰레기가슴(심장 위에 기생하는 수상한 기관)에 자기 연민만 꽉 차서 다른 존재의 고통에는 무감하다. 또 차안대(양측 관자놀이를 감싸는 날개 형태 기관)의 방해로 감각기관이 오작동하여 봐도 못 보는 ‘무시’ 상태에 빠져 있다. 이로 인해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현대인은 자본주의와 지배 집단의 이익에 봉사하며, 자기 연민과 가짜 감정 속에서 허우적대면서 스스로 약자, 피해자라는 망상을 키운다. 급기야 사회는 피해자 포화 상태가 되어 대통령마저 스스로 상처 입은 피해자, 지켜 줘야 할 대상이라고 공표하기에 이른다. 모두가 피해자가 된 세상에서 진짜 피해자는 가려지고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모두가 약 먹고 잠든 세상이 지금 여기다.
『우쭈쭈의 사회학』을 읽은 나는 자신이 왜 지리멸렬하게 살아왔는지 깨닫습니다. 쓰레기가슴, 즉 마음 때문임을 알게 된 거죠. 그래서 마음을 장사 지내 버립니다. 자기 연민은 물론이고 ‘나’라는 관념까지 날려 버린 거예요. 이제야 비로소 나는 마야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인류가 왜 지금 시대의 악당인지, 동물을 왜 먹으면 안 되는지, 자기만족에 빠진 현대 문화와 왜 결별해야 하는지, 왜 지금 급진 생태운동을 펼쳐나가야 하는지를 뼈저리게 알게 됩니다.
둘은 급진 생태운동 정당, 이른바 ‘불(가능)한당’ 창당에 착수해 당의 이념과 사명, 행동 지침을 정리한 뒤 창당 발기인 대회를 엽니다. 예닐곱 명이 참석한 창당 발기인 대회가 끝나고 돌연 잠적한 마야. 며칠 뒤 동물해방전선이라는 단체에서 사회 체제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저항 행동을 벌이고, 마야는 자신의 채널에서 이들의 행동을 지지한다는 폭탄선언을 합니다. 논란의 중심에 선 불한당은 창당 불허 통보를 받고, 나는 유학 준비생 신분으로 돌아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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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데시마’라는 섬에 있는 나무로 지은 네모난 집에는 크리스티앙의 보물이 모여 있습니다. 바로 사람들의 심장 소리가 말이. 쿵쿵, 쿵쿵 울리는 바로 그 심장 소리요. 다른 사람의 심장 소리를 기록할 때마다, 크리스티앙의 심장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세게 콩닥거린답니다.
비건 운동가이자, 국제 환경보호 단체 시셰퍼드의 활동가이자, 작가인 김한민은 픽션 『착한 척은 지겨워』에서 지금 왜 급진 생태운동이 필요하고, 우리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마야의 입을 빌려, 날 선 언어로, 새 사람이 되어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현대 문명의 치부를 낱낱이 까발리고, 목적이 선하다면 폭력 행사도 가능하다고 말하며, 우리 마음속 온갖 변명과 부조리를 팩트로 깨부숩니다. 덕분에 제가 스스로 두른 견고한 담장 한쪽이 조금 허물어지기라도 했는지 보는 내내 시원한 바람을 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나도 이제 착한 척 그만할래.’ 하는 되바라진 생각이 담장 틈새로 삐죽 움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저는 과연 머뭇거리지 않는 삶을 살아갈까요? 제게 행동에 나설 것을 지시하는 수많은 긴급한 팩트들에도 불구하고 그럴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원더박스가 어느 면에서 급진적일 수 있는지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를 행동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만은 움튼 것 같습니다. 이것이 봄의 결심이라면 결심입니다.
편집자 참새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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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눈이 많이도 내렸다.
흠, 박새가 눈썰매를~!
그래,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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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을 받았답니다~📬
💌 참새님이 원하셨던 반응이라닛! 괜시리 뿌듯합니다. 무튼, 내 말 사용 설명서 그림이 예뻐서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뒀습니다. 기대합니다!
🐦 뉴스레터 발송을 비롯한 모든 메시지 발신의 참맛은 응답에 있지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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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Letter~📮
2025년 된 지 3달이 지나가지만, 원더박스는 아직 올해 신간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다려주시는(?) 독자님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이번달에 2권이 나올 거고, 다음 달에도 2권이 예정돼 있답니다. 뉴스레터를 쓰고 있을 때 『나는 새들이 왜 노래하는지 아네』가 창고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음주에는 만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앞으로 신간 소식도 계속 전할 테니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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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뉴스레터, 누가 보내는 거야??👀
🐦편집자 참새
아침에 공원에서 한 똘똘한 참새를 만난 뒤로 틈틈이 참새를 지켜봅니다.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물을 자주 마십니다.
🌱편집자 들풀
책, 술, 산을 좋아하는 편집자. 초등학교 때 한 주에 한 번 동네에 오는 이동 도서관 덕분에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 보지 않을 책은 사지 않는다는 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외계인. SNS에서 지구인들 탐색하면서 지구인인 척 댓글 놀이를 하고 있음. 모 출판사에서 비밀요원으로 암약중이며, <못 그려도 괜찮아>라며 맘대로 막 그린 그림들을 올려서 지구인들 테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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